아무 내역 없이 달랑 ‘식대’ … “분식회계 기업 장부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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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보조금 대해부 <하> 수의계약 171억 문제 없나 

지난 4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국민펀드 모집 1시간 만에 329억8000만원을 모았다. 대통령 당선 71일 만인 지난달 19일 이자까지 붙여 모금한 돈을 전액 상환했다. 펀드 금액 중 실제 선거비용으로 쓰인 돈은 얼마일까.

회계사들이 분석해 보니 #수입 따로 지출 따로, 계정 연계 안 돼 #재무제표도 없는 대선 회계장부 #후원금 등 어디 썼는지 알 도리 없어 #“이렇게 쓴 1200억 보전, 혈세 낭비”

결론부터 말해 회계보고서를 통해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 정당의 선거자금에 대한 수입과 지출 계정이 연계돼 있지 않고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저수지에서 길어온 물을 하나의 물동이에 모두 섞어 놓은 것과 비슷한 게 정당의 회계보고서다. 중앙일보는 공인회계사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공통적으로 “대선 자금에 대한 별도 재무제표가 없어 수입과 지출 구조 파악이 불가능하고 손익계산도 할 수 없게 돼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회계사는 ‘분식회계’ 수준이란 표현도 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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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어디서 온 돈인지 몰라=정당의 회계보고서에서 수입 계정(내역)은 ▶선거보조금 ▶경상보조금 ▶당비 ▶기탁금 ▶차입금 ▶후원금 등 모두 10개다. 지출 계정은 ‘선거보조금’과 ‘보조금 외’라는 두 항목으로만 나뉜다. 선거비용으로 지출한 내역은 수입계정과 연계되지 않는다.

수입 계정 10개 중 선거보조금만 빼고 나머지는 구분 없이 지출 내역으로 잡힌다. 유권자들이 낸 후원금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데 쓰였는지, 인건비에 쓰였는지 알 도리가 없다. 국민 세금으로 반환해 주는 선거보조금이나 당비도 마찬가지다. 선관위는 정당이 선거비용으로 지출했다고 하는 돈에 대해서는 출처와 상관없이 보전 범위 내에선 대부분의 사용액을 보전해 주고 있다.

보고서 분석에 참여한 한 회계사는 “정부나 기업은 수입 항목별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해야 한다”며 “정당은 자율성을 지나치게 보장한 나머지 그런 기초적인 통제에서도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② 구체적 정보 없는 지출 내역=특히 선거비용 지출 보고서를 보면 ▶일자 ▶내역 ▶업체명 ▶주소 ▶연락처 등만 표기돼 있다. 내역은 ‘선거공보인쇄(잔금)’ ‘식대’ ‘홍보대행사 계약금(30%)’과 같이 매우 간단하게 처리돼 있다.

그나마 지출 내역도 정당이 각기 사용 항목을 통일하지 않아 중구난방으로 나열했다. 선거사무원 인건비·식대 항목과 각종 소품만 해도 문 후보는 ‘후보자 식대 운영비(후보자 지원 운영비 중)’ ‘유세단 유니폼 구입비’ 등으로 썼다. 반면에 홍 후보는 ‘선거사무원 수당’ ‘유세지원본부현장지원소품구입’ 등으로 표기했다. 안 후보는 ‘선거사무원 식대’ ‘의류소품(티셔츠) 제작’ 등으로 적는 등 표기 방법이 모두 달랐다.

이총희 회계사는 “식대를 100만원 썼다면 혼자서 100만원을 썼는지, 여러 명이 100만원을 썼는지 알 수 없고 공보물 인쇄 역시 매수가 얼마인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상세한 내역이 없다”며 “내역을 상세히 공시해 타 후보와 비교할 수 있어야 리베이트 가능성 등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입과 지출 구분도, 전체 일괄표도, 세부 계정(내역) 구분도 안 돼 있어 공개된 자료만 놓고 보자면 분식회계를 하는 기업에서나 볼 수 있는 회계 보고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익명을 원한 회계사는 “공개된 회계 보고로는 아무것도 검토할 수 없다. 이 양식으로 3당에 1200억원 이상을 보전한다면 그야말로 국민 혈세 낭비”라고 했다.

③ 예비후보 때 선거비용 2만2360원?=대선후보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예비후보로 등록한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3월 14일, 홍준표 후보는 4월 10일 등록했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은 4월 17일이었다. 이 기간 동안 문재인 후보는 예비후보자 선거비용으로 12억1000만원을 신고했다. 안철수 후보는 1억7350만원을 썼다. 반면에 홍준표 후보가 예비후보로 사용했다고 신고한 선거비용은 사무소 전기료 2만2360원 1건뿐이었다. 예비후보자 때 쓴 돈도 선거비용으로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선관위가 예비후보자 선거비용은 보전해 주지 않는다. 보전은 받을 수 없고, 지출 규모는 올리기 때문에 예비후보 시절의 선거비용은 불투명하게 신고할 여지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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