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될 줄 몰랐다" 이회창, 회고록서 밝힌 박근혜 전 대통령 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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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중앙포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중앙포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2일 자신의 회고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전 총재는 회고록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을 정치에 입문시킨 것은 자신이라고 밝히며 박 전 대통령에 얽힌 일화를 공개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2일 이 전 총재에게 사람을 보내 만나자고 요청을 하고 양측은 비공개로 만났다.

이 전 총재는 당시 박 전 대통령 첫인상에 대해 "차분하고 침착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부모님이 모두 비명에 가신 참담한 일을 겪었는데도 어두운 이미지는 전혀 없었다"고 떠올렸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우리나라가 경제난국에 처한 것을 보고 아버님 생각에 목이 멜 때가 있다"며 "이럴 때 정치에 참여해 국가를 위해 기여하는 게 국가와 부모님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이 전 총재는 전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이 "이왕이면 깨끗한 정치를 내세우는 한나라당에 입당해 정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흔쾌히 응낙했다"며 "그를 정치에 입문시킨 사람은 나"라고 기술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2002년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대선 후보로 출마한 이 전 총재를 따라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이 전 총재는 "당시 그의 헌신적인 노력을 고맙게 기억해서 2012년 대선 당시 그가 나를 찾아와 지지를 부탁했을 때 흔쾌히 응낙했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재는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맡아 천막당사로 옮겨 당의 재기를 이루는 것을 보고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에는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입당해 전국적인 지원유세까지 다니면서 그를 도왔다"며 "소통과 화합의 정치를 한다면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지원유세도 자발적으로 열심히 다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수행 능력에 대해서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국정운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하고 기대도 접었다"며 박 전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를 압박한 것에 대해 "소신을 지키고자 한 것이 왜 배신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터지고 탄핵 사태까지 진전되는 상황을 보며 그의 실질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원하는 대로 대통령이 됐지만 대통령의 일에 대한 정열과 책임감, 판단력은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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