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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AI 때문에 ‘알 낳는 닭’ 대거 살처분 … 살충제 사태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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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건강한 암탉’ 부족 현상이 살충제 계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재발한 고병원성 인플루엔자(AI) 이후 중추(생후 10주 정도의 닭) 부족 현상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노계들이 산란계 역할을 했다. 하지만 노계가 진드기에 약한 까닭에 평소보다 더 많은 살충제를 살포했고, 이게 결과적으로 살충제 계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진드기에 약한 노계 비율 크게 늘어 #농가들 평소보다 더 많은 약 살포 #산란계값은 1년 새 두배 이상 올라 #계랸 판매량은 절반으로 떨어져 #“사육·유통 방식 근본적 개혁 필요”

대한양계협회에 따르면 현재 산란계는 약 6000만 마리로 지난해 말 AI 발생 이전의 80% 수준으로 추산된다. 농가는 중추를 받아 약 24주부터 계란을 생산하고, 약 70주가 되면 폐 닭 처리한다.

대한양계협회의 남기훈 채란위원장은 “AI 재발 이후 노계와 병아리 등 비중이 높아 당장 계란을 생산할 수 없는 닭이 약 30%”라며 “AI로 계란값이 오르자 70주를 넘어 80주, 85주까지 닭을 키우는 농가가 늘어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노계가 ‘살충제 계란’의 원인이 된 닭 진드기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충남 지역에서 양계농가를 운영하는 A씨는 “노계는 아무래도 면역력이 떨어진다”며 “또 사육 기간이 길어주면 닭장을 청소할 수 있는 시기도 늦춰져 닭 진드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계는 사료 대비 생산성이 떨어져 70주 후면 폐기하는 게 농가도 이익이지만, 계란값 고공행진과 중추 가격 상승으로 미적거린 게 화근이 됐다. 지난해 말 AI로 약 2500만 마리의 산란계를 살처분한 이후 중추의 가격은 2배로 뛰었다. 양계협회에 따르면 이달 중추 평균 가격은 8250원으로 지난해 8월 3500원에 비해 두 배 이상 올랐다.

반면 계란은 공급 부족 현상을 가져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AI가 재발한 지난 1월 산지 계란 시세(도매)는 개당 210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두 배(109원)에 달했다. 이후 연중 150원 이상을 유지했다.

이런 이유로 케이지에 ‘건강한 닭’을 들여놓는 시기가 늦춰진 셈이다. 남 위원장은 “AI로 피해를 본 양계장 중에는 종계 농가도 포함돼 있어 중추 부족 현상이 현재까지 이어졌다”며 “2~3개월 이후에나 해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농가도 망연자실하고 있다. 충남 천안서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는 B씨는 정부의 전수조사가 실시된 지난 15일 이후 숨죽이며 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 ‘부적합’ 판정은 피했지만 앞으로 대책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B씨는 “닭 진드기는 여전한데 약을 하면 안 된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케이지를 비우고 닭장 청소를 하려면 중추를 들여놔야 하지만 한 번에 수억원의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앞당겨서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산란계의 살처분 여부도 관건이다. AI는 법정전염병이기 때문에 정부가 앞장서 살처분·매몰을 비롯해 농가보상까지 했지만, ‘살충제 계란’은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 위원장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해선 논의가 시작되지 않았다”면서 “정부의 판단에 따라 혼란이 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수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50여 농가의 산란계는 전체의 5% 수준인 300만 마리로 추산된다. 이런 가운데 대한양계협회는 21일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산란계의 케이지 입식 기간을 줄이는 방안을 비롯해 친환경 약품 사용 등에 관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계란 파동을 바라보는 소비자 반응은 냉담하다. 정부의 전수조사 후 “현재 판매 중인 계란은 안전하다”고 했지만, 소비자들은 계란을 외면하고 있다. 대형마트들은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이후 한때 계란 판매를 중지했지만 하루 만인 지난 16일부터 판매를 재개했다. 그러나 판매량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aT)에 따르면 21일 계란 한 판(특란 30개)의 소매 가격은 7445원을 기록했다. 직전 집계인 지난 18일에 비해 87원 내려갔지만, 살충제 파동 이전인 14일에 비해선 150원 올랐다.

지난 14일까지 롯데마트에선 하루 평균 40만~50만 개의 계란이 팔렸지만 파동 이후 전주 대비 55% 수준에 그쳤다. 이마트와 홈플러스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주 대비 매출이 41~45% 감소했다. 매장 곳곳에 정부 주관하에 시행한 검사를 통과한 상품이라는 안내문을 설치했지만, 이 또한 의미가 없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자체적인 검사를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며 “정부 차원의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 소비자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것 같다”고 말했다.

주부들의 움직임은 정부의 대응을 앞서가고 있다. 맘카페 등을 주축으로 ‘가장 안전한 계란’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며 옥석가리기에 나서고 있다. 주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품은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이다. 가격이 600~900원으로 대형마트의 한 개당 가격인 230원에 비해 두세배 비싸지만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이번 계란 대란은 이전과 다른 양상이다. AI 때는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폭등했지만, 이번 사태는 계란에 신뢰가 깨지면서 ‘에그포비아’를 양산했다는 점이다. 양계협회 이상목 부장은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당장을 모면하기 위한 단발적인 대책이 아닌 사육 방식이나 계란 유통 기준처럼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주·최현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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