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부처 예산 절감계획'에 정색하며 "전면 재검토" 지시한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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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기획재정부가 함께 제시한 ‘재정 감축 계획’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제동을 걸었다고 정부 당국자가 20일 밝혔다.당초 기획재정부는 정부가 쓸 돈(세출예산)에서 첫해 9조원을 절감하겠다고 밝혔다가 문 대통령이 '퇴짜'를 놓는 바람에 나중에 11조원으로 목표치를 올렸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문 대통령, '소극적' 부처 예산 절감 계획에 "전면 재검토" 지시 #김동연 부총리, 대통령 지시에 뒤늦게 "첫해 절감액 2조 늘려" #靑 "공무원 '밥그릇' 지키기 위한 설계로밖에 이해 못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 전략회의에 참석해 “경제 정책의 중심을 국민과 가계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이낙연 국무총리, 문 대통령,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 전략회의에 참석해 “경제 정책의 중심을 국민과 가계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이낙연 국무총리, 문 대통령,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는 지난달 19일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소요재원으로 5년간 178조원을 제시했다. 이중 82조6000억원은 세입예산 확충으로, 95조4000억원은 세출예산 절감을 통해 충당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세출절감액 중 60조2000억원은 기존 부처의 사업예산 등을 줄여서 마련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0~2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60조2000억원의 연도별 절감액을 물었다. 관련 보고서에는 연도별로 계획이 나와있지 않고 ‘연평균 12조원’이라고만 돼 있었다고 한다. 이에 기재부는 ‘집권 첫해 9조원→마지막해 28조원’으로 첫해가 가장 절감액이 적고, 마지막해가 가장 높은 계획안을 보고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정색을 하며 “계획을 새로 만들라. 개혁 동력이 강한 초기에 확실한 구조조정을 해야한다”며 즉각시정을 지시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문 대통령의 성격상 ‘격노’에 가까운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정권 말기, 특히 마지막해에 28조원의 세출절감을 통해 정부 사업을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감축안은 구조조정 의지가 전혀 없다는 뜻”이라며 “공무원들이 밥그릇을 놓지 않겠다는 뜻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고 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백서에 나타난 정부 부처 예산 구조조정안. 5년간 절감 총액 60조2000억원을 표시한 뒤, 연평균 12조원을 줄인다는 내용 외에 연간 절감 계획안은 빠져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백서에 나타난 정부 부처 예산 구조조정안. 5년간 절감 총액 60조2000억원을 표시한 뒤, 연평균 12조원을 줄인다는 내용 외에 연간 절감 계획안은 빠져있다.

이후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지난 9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내년 재정지출 구조조정 규모를 9조원에서 2조원 이상 늘린 11조원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기재부는 5년간의 정부예산 구조조정을 어떻게 할지는 이후에도 구체안을 밝히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가 기재부의 관계 부서에 계획안을 물었지만 “확정되지 않았다”,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재정전략회의 당시 문 대통령의 지시도 청와대나 여당은 브리핑에 담지 않았다.

김현철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기재부가 5월에 갑자기 정부가 출범한 사정 등을 감안해 첫해는 구조조정 액수에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해왔다"며 “기존사업을 뺏기기 싫어하는 것은 공무원의 본성인데다, 기존 예산에는 국회의원들의 민원성 지역예산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재정지출 감축에 대한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보좌관은 “각 부처의 반발과 여소야대 국회 상황까지 고려하면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논란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제공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제공 청와대]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공약이행에 필요한 재원 논란과 관련해 “증세를 통한 세수 확대만이 유일한 재원대책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재정 지출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해 절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100대 과제 이행 위한 178조 조달 계획>

구분

5년 합계

<세입 확충>

82조 6000억

-국세수입

77조 6000억

 ·세수 자연증가

60조 5000억

 ·비과세·감면정비

11조 4000억

 ·탈루 세금 징수 강화

5조 7000억

-세외수입

5조

<세출 절감>

95조 4000억

-재정지출 절감

60조 2000억

-여유자금 활용 등

35조 2000억

(※출처 : 국정기획자문위 백서,단위 :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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