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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다른, 유럽과 한국의 살충제 계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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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경제부 차장

박현영경제부 차장

유럽은 식품 안전 기준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진드기 살충제 ‘피프로닐’의 계란 잔류 허용치도 마찬가지다. 국제식품규격(Codex)은 계란 1㎏당 0.02㎎을 허용하지만, 유럽연합(EU) 기준은 4배 높은 0.005㎎이다. 이런 여건에서 유럽 농장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이 시작된 건 아이러니다. 유럽과 한국의 계란 파동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개 양상이 사뭇 다르다.

①시작: 유럽은 산란계 농장의 신고로, 한국은 정부 조사로 농약 검출이 확인됐다. 폴리티코 등 언론에 따르면 지난 5월 벨기에 산란계 농장은 자체적으로 피프로닐 잔류 검사를 했다. 이상 수치가 나오자 벨기에 식품안전청에 신고했다. 이 기관은 네덜란드의 계사(鷄舍) 청소업체를 금지 약품 사용자로 지목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 업체가 청소를 대행한 농장을 조사했고, 농장들의 자발적 신고가 더해져 네덜란드·프랑스에서도 살충제가 검출됐다. 유럽 농가의 자발적 신고 덕분에 한국의 살충제 계란도 드러나게 됐다.

②경로: 네덜란드 경찰은 청소업체가 세척 용액을 제조하면서 피프로닐을 몰래 섞었다고 보고 있다. 농가들은 “우리도 속았다”고 주장한다. 당당히 신고할 수 있었던 이유다. 유기농 농장주들은 “유칼립투스와 멘톨 등 천연성분 세정제로 알고 구매했다”고 호소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농장주가 약품을 사 직접 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지·허용 살충제를 혼동한 실수인지, 고의인지, 다른 이의 책임은 없는지 추후 확인돼야 할 부분이다.

③위험: 네덜란드는 피프로닐 검출을 발표하면서 잔류량에 따른 인체 위험도를 3단계로 구분했다. 액션 플랜이다. 검출량이 0.72㎎/1㎏을 넘으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섭취를 금지했다. 이보다 적고 0.06㎎을 넘으면 어린이가 장기간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보다 적고 0.005㎎을 넘으면 판매할 수 없지만 섭취해도 위험하지는 않다. 한국 정부는 “먹지 않는 게 좋다” “먹어도 된다” “버려라”라며 엇갈린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

국가별로 식품 안전 기준은 다를 수 있다. 네덜란드 기준이 우리에게 맞으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귀기울여지는 건 연간 6700억원어치 계란을 내다 파는 EU 최대 계란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수치를 제시한 데이터가 믿음을 주기도 한다. 이 기준으로는 0.0363㎎이 검출된 남양주 농장, 0.056㎎이 나온 철원 농장의 계란도 먹을 수 있다. 검출·불검출도 중요하지만 이참에 사후 대처법을 정비해야 한다. 금지 농약을 사용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자발적으로 신고하거나 추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인체 유해 여부도 보다 과학적으로 알려야 한다.

박현영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