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난사 탄흔’ 전일빌딩, 사적 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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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5·18 당시 계엄군이 헬기 사격을 한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조사 결과사진 속 원안을 중심으로 공중정지 상태의 헬기에서 사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 5·18기념재단]

5·18 당시 계엄군이 헬기 사격을 한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조사 결과사진 속 원안을 중심으로 공중정지 상태의 헬기에서 사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 5·18기념재단]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난사가 이뤄진 옛 전남도청 옆 전일빌딩이 5·18사적지로 지정됐다.

시민군, 계엄군에 맞선 대표 항쟁지 #10층 벽 등서 177개 총탄 흔적 확인 #“5월 정신 기리는 공간으로 만들 것”

전일빌딩은 옛 전남도청과 함께 시민군이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대표적인 곳이다.

광주광역시는 15일 “5·18 당시 헬기 사격에 의한 탄흔이 발견된 금남로 전일빌딩의 10층 내부와 외벽 등을 5·18사적지(제28호)로 지정 고시했다”고 밝혔다.

전일빌딩이 5·18사적지가 된 것은 지난 1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이 건물에서 발견된 탄흔을 80년 5월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발표한 지 8개월 만이다. 국과수는 발표 당시 “전일빌딩 외벽과 내부에서 발견된 탄흔은 호버링(공중정지) 상태의 헬기에서 발사됐을 것으로 유력하게 추정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과수는 총탄 흔적 각도가 수평에 가까운 점, 벽이 있는 바닥에도 총탄 흔적이 남은 점, 80년 당시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었던 점 등을 근거로 헬기에서 사격한 것으로 분석했다.

앞서 5·18기념사업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전일빌딩의 역사성을 인정해 사적지 지정을 심의·의결했다. 5·18 사적지는 광주시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업 기본조례’에 따라 각계 인사들이 참여한 5·18기념사업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지정한다.

전일빌딩은 영화 ‘택시운전사’나 ‘화려한 휴가’ 등에서 옛 전남도청과 함께 5·18 관련 영화의 주된 배경으로도 활용돼 왔다. 이곳은 5·18 당시 시민군이 옛 전남도청을 오가며 계엄군에 맞서 항쟁을 준비하고 저항한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어서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인물인 독일 기자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역시 옛 전남도청과 전일빌딩 등이 있는 금남로와 광주시내를 오가며 5·18의 참상을 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렸다.

국과수는 이 건물에 대해 3차례에 걸친 조사를 벌인 결과 80년 5월 당시 전일방송 영상 데이터베이스(DB) 사업부로 쓰였던 10층 내부 기둥과 바닥, 천장 등에서만 177개의 탄흔을 확인했다. 5·18사적지는 80년 5월과 관련해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에 대한 원형보존과 관리를 위해 지정하고 있다. 5·18이 시작된 전남대 정문(제1호)과 옛 전남도청(제5호), 상무대 옛터(제17호) 등 27곳이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전일빌딩은 1968년 7층 건물로 준공된 뒤 4차례 증·개축을 거쳐 1980년 현재의 지상 10층, 지하 1층 규모를 갖췄다. 그동안 건물 전체에 대한 철거 여부 등을 놓고 논란을 빚었으나 헬기 탄흔이 발견된 후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았다.

김수아 광주시 인권평화협력관은 “5·18의 역사를 간직한 전일빌딩을 5월 정신을 배우고 기리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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