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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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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홍상지 기자 중앙일보 기자
홍상지 사회2부 기자

홍상지 사회2부 기자

지난해 이맘때쯤 한 저녁 자리에서 나를 앞에 두고 두 중년 남성이 나눈 대화다. 기억나는 대로 적어 본다.

A=“미혼이죠? 여기자들은 보통 결혼을 언제 하나?”

B=“어차피 할 거면 여자들은 빨리 결혼해야 해.”

A=“지금이 어떤 시댄데 그런 소릴 해. 혼자 먹고살 능력 되는 여성들은 좀 늦게 해도 돼.”

B=“신랑한테 의지도 좀 하고 살아야지. 애는 안 낳아?”

성별·외모·직업·결혼·출산 등 케케묵은 소재로 들어오는 공격은 언제나 기습적이다. ‘참을 인(忍)’ 자를 머리에 여러 번 새겼다. “제가 어련히 잘하지 않겠어요?” 일단 웃으며 넘겼다.

난 그 자리에서 화를 낼 수 없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그분들은 ‘원래 좋은 분인데’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이런 말이 실례가 된다는 걸 잘 모르셨기’ 때문이다.

‘그게 잘못된 줄 모르니까.’ 요즘엔 바로 그 지점이 나를 속 터지게 한다. 최근 페이스북에서는 ‘며느라기’라는 웹툰이 인기리에 연재 중이다. 웹툰은 한 남자와 결혼하면서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된 주인공 ‘민사린’이 겪는 사소한 일상들을 담았다. 볼 때마다 고구마 100개를 물 없이 먹은 것처럼 답답하다. 웹툰에는 해외 출장 간다는 며느리 말에 ‘아들이 아침밥 못 먹을까’부터 걱정하는 시어머니, 그런 시어머니를 “직장 생활 못 해봐서 그렇다”며 무시하는 시아버지, 우유부단한 남편이 등장한다.

웹툰 속 민사린을 보며 그때 그 저녁 자리가 떠올랐다. 웹툰 속에서도 정말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장인물들은 그냥 자기가 살아온 대로, 어떠한 악의도 없이 상대방을 대한다. 다만 그게 무례하다는 걸 모를 뿐이다. 민사린은 그 사실을 알기에 ‘이건 분명히 이상해’라고 느끼면서도 특별히 항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이 다치는 건 자기자신인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다.

주변 지인들은 그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늘 “애매하다”고 했다. “남편이 밥 안 차리고 맨날 늦게 들어온다고 뭐라 안 해?” “그 나이에 애인도 없이 무슨 재미야?”라며 누군가가 농담 삼아 던지는 말에 대놓고 정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속은 쓰리지만 그냥 웃고 만다는 것이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다만 모르면 배워야 한다. 그래야 변한다. “지금 그거, 조금 불편한데요?” 말할 용기도, 그걸 수용할 감수성도 필요한 때다. 혹자는 ‘아이고, 요즘 애들한테는 무슨 말을 못 하겠네’라고 볼멘소리를 낼 수도 있겠다. 그쯤 되면 모르는 건 죄가 맞는 것 같다.

홍상지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