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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집 앞에 스타벅스가 없어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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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 현 사회 2부 기자

이 현 사회 2부 기자

일본 돗토리현의 스타벅스 매장은 관광객에게도 꽤 유명하다. 스타벅스가 일본에 첫 점포를 연 건 1996년, 전국에 지점이 늘어났지만 돗토리현만큼은 오랜 기간 ‘스타벅스 프리존’이었다. 돗토리현 지사는 한때 “스타바(스타벅스의 일본식 발음)는 없지만 스나바(모래사장)는 있다”고 지역의 천연 경관을 홍보할 정도였다. 그랬던 돗토리현마저 2015년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우리 동네에는 그 흔한 스타벅스 매장 하나 없다.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카페라고는 테이블 네 개짜리 작은 동네 커피숍 하나가 전부다. 제일 가까운 스타벅스 매장까지는 2㎞ 남짓, 차를 타고 10분쯤 걸리는 곳에 있다. 내가 상상한 신혼은 휴일 아침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 한 잔 놓고 독서하는 장면이었지만, 이제는 집에서 직접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들고 거실 소파에서 맞는 휴일도 나쁘지 않다.

집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으면 집값이 오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른바 ‘벅세권’이라 부르는데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거나, 길을 건너지 않아도 등교할 수 있는 초등학교가 있을 경우 집값을 더 쳐주는 것과 비슷하다. 지난해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지인은 집을 보러 다니면서 가까운 스타벅스 매장의 등기부 등본까지 떼봤다고 했다. 본사 직영으로 운영되는 스타벅스가 상가를 샀거나, 장기임대를 해서 매장을 열었다면 근처 집값도 오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부모님 세대에 백화점 근처에 집을 사면 올랐다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믿을 수 없어 매장 개수를 찾아봤다. 서울 강남구 64개, 서초구 40개, 송파구 25개, 은평구는 6개였다. 비단 스타벅스만은 아니다. 패스트푸드점, 대형 의류매장도 부동산 업계에서는 ‘호재’로 여긴다. 울릉도에서는 지난달 28일 롯데리아가 문을 열었다. 울릉도 부동산 가격은 일주도로 완공, 공항 건설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례 없이 들썩이고 있다.

서울 강남 3구 아파트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오른다고 더 늦기 전에 사려는 사람과 더 오를 것 같아 매물을 거둬들이는 사람들 때문에 소란스럽다고 한다. 10억원이 훌쩍 넘는 아파트 값은 나 같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고참 선배들 중에는 강남 3구 거주자들이 꽤 있다. 그런데 우리 입사 동기들은 열에 아홉 서울 주변부만 위성처럼 맴돌고 있다. 우리에게는 강남 집값을 내리는 정책보다 ‘우리 동네에 스타벅스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차라리 현실적이다.

이 현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