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 2035

아줌마도 꿈이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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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경희 중앙SUNDAY 정치부 기자

김경희 중앙SUNDAY 정치부 기자

지난해 말 가수 박효신의 콘서트장에서 생긴 일이다. 인기 가수의 콘서트는 스탠딩석 티케팅 경쟁이 더 치열하다. 이제 막 서른 줄에 접어든 친구와 나는 ‘하느님석’이라 불리는 꼭대기 층 좌석을 예매했다. 3시간 이상 서서 공연을 볼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가까이서 그의 땀 냄새라도 맡는 건 어린 친구들에게 양보하자는 깊은 뜻(?)도 있었다.

한창 음악에 젖어 있을 때쯤 박효신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매번 콘서트 때마다 자신이 리포터가 되어 관객 인터뷰하기를 즐긴다고 한다. 원형 무대를 중심으로 스탠딩석을 쭉 돌며 눈에 띄는 관객들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식이었다. 빼놓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꿈이 뭐예요?” ‘꿈’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하는 가수였다.

인터뷰 상대는 대개 20대였다. ‘그럼 그렇지, 몇 시간씩 서 있었던 보람이 있겠네’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마지막에 진짜가 나타났다. ‘아줌마도 꿈이 있어요’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손팻말을 두 손 높이 든 여성이었다. 40대 초반 나이에 자녀가 둘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박효신이 “아이들은 어쩌고 여기 오셨어요?” 묻자 되돌아온 말이 시원했다. “하하, 제 아빠랑 잘 놀고 있겠죠. 뭐.”

카메라에 잡힌 그의 표정은 애 둘 딸린 유부녀가 아니라 좋아하는 가수 앞에 선 10대 소녀였다. 바리스타인데 자신의 이름을 내건 카페를 갖고 싶다는 꿈도 키우고 있었다. 결혼과 육아라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꿈을 추구하는 여성이 참 멋져 보였다. 20대 틈에서 목이 쉬어라 박효신을 외치며 방방 뛸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은 두말할 것도 없고….

청년 인재 양성에 관심이 많은 한 지인도 사람들 만나면 꿈이 뭐냐고 묻곤 한다. 꿈 얘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어 좋다면서다. 하지만 선뜻 답을 내놓기 어려워하는 이가 많다고 했다. 자신의 꿈이 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청춘이 많다는 얘기다.

그는 10년 전 나에게도 꿈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 그가 정확히 기억하진 못했지만 단순히 기자가 되는 게 꿈은 아니었던 것 같단다. 돌이켜보니 내 꿈은 ‘행복한 저널리스트’가 되는 거였다. 잘해야 본전이기 십상이고 이쪽 저쪽에서 욕도 많이 먹는 직업이라 마냥 행복을 추구하기가 쉽진 않다. 그래도 꿈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장에서 온전히 자신의 행복에 집중했던 40대 아줌마처럼.

김경희 중앙SUNDAY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