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주부」의 "그림자 내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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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절대로 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궂은일만 뒷바라지하는「고전적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시종일관 심어온 대통령 당선자 노태우민정당 총재부인 김옥숙여사(52). 그는 이번 선거기간동안 매스컴과의 공식 인터뷰에 응한 적이 단 한번도 없으므로 「그림자내조」의 진면목도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자신이 대한민국의 대통령부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쯤인지, 그렇게된다면 어떤 역할을 어떤 자세로 해낼 각오인지 등 「보통사람들」의 매우 자연스런 관심사에 대해서도 아직 밝힌바 없다.
이번 선거기간 중 단편적으로 드러난 모습이라고는 그의 모교인 경북여고동창회에 참석해서 연단에 오르기를 극구 사양하며 『잘 부탁드린다』고만 인사하여 남편의 선거유세에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인상을 재삼 강조한 정도다.
그러나 한때 미인선발대회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만큼 상당한 미인형이며 대단한 멋장이라는 사실 등 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하여튼 여러모로 더욱 세간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 김여사가 27세의 육군중위였던 노총재와 결혼한 것은 1959년. 김영한씨(80년 작고)와 홍무경여사(80)의 3남2녀 중 맏딸로 태어난 김여사는 결혼당시 24세로 경북대 사대 가정학과 3학년을 중퇴하고 집에서 신부수업을 받고 있었다. 「오성회」란 모임을 중심으로 노총재와 친하게 지내온 김복동씨(광업진흥공사 사장)가 김여사의 친오빠여서 결혼7∼8년 전부터 알아온 「휘파람 잘 부는 오빠의 친구」노중외가 구혼했던 것이다.
대구 문화예식장에서 결혼하고 부산해운대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사홀 만에 남편이 미국 유학 길에 오르게되어 6개월 동안 떨어져 지낸 후에야 서울 청파동의 4백만 원짜리 전세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 2평 반 짜리 단칸방 시절에는 부대에서 주는 결식미를 받아다 양식을 삼고 역시 남편이 가져온 건빵은 구멍가게에서 다른 생필품과 바꿔 쓸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노총재와의 사이가 매우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김여사는 남편이 군인이던 시절부터 웬만한 파티나 이·취임식장에는 항상 동반했고, 남편이 전역 후 대통령 특사로 유럽과 아프리카를 순방할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노총재가 민정당대표위원에 취임한 이후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공식석상에 나타나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심지어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때도 단상에 나란히 앉지 않고 김여사는 의원 부인석에 따로 앉았을 정도.
군인이던 남편이 정치가로변신한데 대해 김여사 자신의 입장과 느낌을 직접 표현한 적은 없으나 『처음엔 고통스런 모양입디다. 1년쯤 지나니까 어쩔 수 없는가 보다고 여기며 내게 알맞는 내조를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요』라는 것이 노총재가 어느 자리에서. 전한 이야기다.
자녀는 맏딸 소영양(26)과 아들 재헌군(22)남매가 있다. 소영양은 서울대 공대 재학 중에 미국으로 가서 대학을, 영국에서 대학원을 각각 마친 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다가 귀국해서 어머니 김여사와 함께 아버지 노총재를 돕는 중.
그는 미국유학 중 설문조사서의 「존경하는 인물」난에 아버지 노총재의 이름을 써넣는 바람에 이를 의아하게 여긴 교수가 부모들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문의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이것은 노총재가 상오 6시면 자녀들을 불러 침대에 나란히 누운 채 학교며 친구 이야기·고민·역사·조상 등에 관해 폭넓게 대화하는 것을 비롯해서 자녀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기 때문이리라는 것이 김여사의 설명.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인 아들 재헌군은 이번 선거기간동안 친구들과 함께 서울강남지역에 연락처를 두고 대학생 층의 지지세력을 넓히기 위해 전력투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여사의 자녀 교육방침은 스스로 자신의 일을 알아서 처리케하는 것. 무슨 일에서든 스스로 결정토록 하고 김여사는 그 결정에 따르는 책임이나 미처 생각지 못한 의무를 일깨워주기만 한다는 것이다.
김여사가 남편과 함께 즐기는 취미는 테니스. 김여사의 몸이 약해서 시작한 운동인데 부부의 나이를 합쳐 1백세가 넘는 부부들끼리 벌이는 「1백세 테니스대회」에서 3등을 차지했을 정도라고 한다.
노총재가 아침운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금김사가 차러내는 아침상의 메뉴는 들깨죽·팥죽·호박죽·율무죽·콩죽·전복죽 등의 죽 종류. 그는 손수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정말 좋다며 「보통주부」임을 슬며시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매스컴을 기피하고 표면에 나서는 일이 없기 때문에 『공연히 앞에 나서봤자 남편의 득표작전에 도움될게 없기 때문이 아니냐』는 등 갖가지 억측이 나돌기도 했다.
이 같은 풍문은 더 발전하여 이제껏 그 역할과 입장에 비해 너무도 그 모습을 숨겨오기만 한데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했다.
그에 대해 일부에서는 민정당의 참모진들이 『차기 대통령의 부인은 다소곳한 현모양처형의 이미지여야 한다』고 주장, 그와 같은 김여사의 자세를 선거전략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하지만『여자란 모름지기 그림자처럼 뒷전에서만 내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발상이라면 여성의 사회진출을 적극 뒷받침하겠다는 등 남녀 평등을 보장하겠다는 민정당의 약속을 어떻게 믿느냐』는 반론에 부딪치기도 했다.
그러나 김여사의 주변사람들은 그가 유난히 수줍음을 타서 남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며, 말 잘하는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요령 있게 받아넘길 만큼 사교적이지 못하고 살림살이에 대한 것 말고는 정치라든가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에 특별히 내세울만한 의견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통령후보 부인이 남편의표를 얻거나 깎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가여성 75%, 남성64%라는 조사결과에 비춰볼 때 김여사는 이번 선거에서 얼마나 많은 표의 향방을 정한 것일까.
이제껏 김여사가 보여온「그림자 내조」의 모습이 앞으로 더욱 커질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역할과는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에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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