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부 몰라서 환자 몸 헤집는 수사 안돼" 조은석 서울고검장 취임식

중앙일보

입력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리니….”

"오늘 남긴 발자국이 뒷 사람의 길" #취임식에서 서산대사 선시 인용도 #"99% 형사사건 처리에 누적된 불신있어" #연수원 22~23기 검사들은 잇따라 사의

1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2층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조은석(52ㆍ사법연수원 19기) 신임 서울고검장은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를 인용했다.

조 고검장은 “검찰의 지금 행동 하나하나가 후대에 이정표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였다.

조은석 서울고검장이 1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서울고검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은석 서울고검장이 1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서울고검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고검장은 취임사 서두에 “상시화된 검찰의 위기는 우리가 국민 신뢰 회복의 길을 제대로 가지 않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고 검찰이 처한 현실을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 신뢰를 잃은 원인은 1%의 특정 사건을 잘못 처리했다는 말 뿐만 아니라, 99%의 형사사건과 민원 업무 처리 과정에서 야기된 누적된 불신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며 “검찰이 억울함을 풀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원망을 새로 만드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데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으로 새로운 억울함이 유발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 여건이 허락하는 한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환부를 정확히 몰라 이를 찾는다고 환자 몸 여기저기를 헤집어 놓으면 당사자는 어떤 처지 되겠냐”며 검찰의 수사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검찰 구성원의 비리 문제에 대한 경계심도 주문했다. 조 검사장은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고 한다. 청렴 의무를 저버린 불법, 부당행위는 드러나게 돼 있다”며 “타인의 잘잘못을 조사하고 결정하는 검찰이 오히려 감찰 기구와 인력이 계속 확대되는 상황이 부끄럽다. 공직자 본분을 명심하고 청렴한 생활을 하자”고 말했다.

조은석 신임 서울고검장은 대검찰청 공판송무과장, 범죄정보1·2담당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대검 대변인, 서울고검 형사부장, 대검 형사부장 등을 지냈다. [연합뉴스]

조은석 신임 서울고검장은 대검찰청 공판송무과장, 범죄정보1·2담당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대검 대변인, 서울고검 형사부장, 대검 형사부장 등을 지냈다. [연합뉴스]

조 서울고검장은 대검 범죄정보1ㆍ2담당관과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대검 대변인, 대검 형사부장 등을 거쳤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대검 형사부장으로서 원칙에 따른 수사를 강조했다가 박근혜 정부에 미운 털이 박혔다는 평가도 받았다. 청주지검장(10개월)을 지낸 뒤 2015년 12월부터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근무한 것도 당시의 일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첫 검찰 간부 인사에서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했다. 서울고검은 서울중앙지검을 비롯해 서울과 인천, 경기, 강원 지역 검찰청을 관할한다.

이날 취임식에는 윤석열(57ㆍ23기)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약 500명의 검찰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서울고검 이외에도 여러 검찰청에서 지난달 27일 승진 인사에 따른 취임식이 열렸다.

승진 대상자 명단에서 제외된 검사들(연수원 22~23기 중심)은 줄줄이 사의를 표명하거나 사표를 내고 있다.

이명순(22기) 서울고검 형사부장, 안병익(22기) 서울고검 감찰부장이 사표를 제출했고, 김창희(22기) 서울고검 송무부장, 이기석(22기)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김영종(23기)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이완규(23기) 인천지검 부천지청장, 김진숙(22기) 서울고검 검사 등도 사의를 표명했다.

현일훈ㆍ박사라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