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태광의미생물이야기

미생물도 의사소통을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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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럼 모든 미생물은 단 한 가지 언어만 사용할까.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병원성 미생물이 많이 사용하는 'AHL'을 비롯한 대략 세 가지 부류의 화학 물질이 보고되고 있다. 물론 미생물의 화학언어도 기본구조에 다양한 변화를 가진 사투리가 존재한다.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화학언어를 구사하는 미생물도 보고되고 있고, 더욱이 모든 미생물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도 최근 발견됐다. 또한 공용 언어로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많이 흡수해 다른 미생물이 자기의 숫자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정보전을 하는 미생물도 보고되고 있다. 충분한 숫자로 미생물이 불어나면 화학언어로 방송을 하게 된다.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은 방송을 청취하고 난 뒤 잠자고 있는 유전자 공장을 깨워 독소를 대량으로 생산하게 된다. 잘못된 방송을 듣고서 행동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생물은 방송된 화학언어가 자기가 행동해야 하는 명령인지를 면밀하게 확인한다. 자물쇠와 열쇠와 같은 체계를 사용해 확인한 뒤에야 독소 생산 공장을 가동하는 신중함도 보인다.

수십 억의 병사에게 동시에 명령을 전달하고 행동하는 미생물이야말로 진정 무서운 군대다. 외부 침입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성을 쌓거나 담장을 치듯이 미생물도 생체막이라는 성곽을 만드는데 이때도 화학언어를 사용한다. 구성하는 벽돌을 명령에 따라 개개의 미생물이 만든 뒤 동시에 쌓기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에 성곽을 완성시킬 수 있다. 미생물 생체막이란 성곽은 작은 통로로 잘 구성돼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나 산소는 잘 공급되지만, 미생물에 위협적인 요소인 항생제나 면역물질의 접근은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수십 억 마리가 짧은 시간에 만드는 성곽을 그렇게 정밀하게 만들 수 있다는 노하우는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기술이다. 공격용 병원성 독소와 방어용 생체막뿐만 아니라 다른 미생물과의 전쟁인 항생제 생산이나 식물체에 침입해 유전자를 주입하는 것과 같은 미생물 집단의 초대형 사업에는 반드시 화학언어를 사용해 합동으로 한다. 최근 병원성 미생물의 화학언어를 교란시켜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예방하거나 치유하는 신약을 개발하고자 많이 노력하고 있다. 좀 더 연구해 미생물이 나누는 언어를 인간이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 화학적이든 물리적이든 대화를 통해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도 개발될 것이다. 즉 위협적인 미생물을 우호세력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모든 전제 조건은 대화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미생물 학자는 끊임없이 미생물 언어의 비밀을 풀고 있다.

오태광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미생물유전체 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