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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전형료 인하, 겉으론 대학 자율이라더니 속으론 압박하는 교육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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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대입전형료를 인하하겠다"고 발언한 이후 대학들에게 전형료를 인하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는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대입전형료를 인하하겠다"고 발언한 이후 대학들에게 전형료를 인하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입 전형료 인하의 필요성에 다들 공감할 겁니다. 교육부 강요 때문에 억지로 낮추는 게 아니라 자율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문대통령의 "대입전형료 낮추겠다" 발언 이후 #교육부, 25개 대학 입학처장 모아서 인하 '압박' #"전형료 인하 수준 재정 지원 사업 평가와 연계" #대학들 "멱살만 안 잡았지 강압적 분위기" 토로 #교육부 관련 공문에는 '25% 인하' 예시도 명기 #대학들 "당장 전형료 인하하면 재정 손해 불가피" #"정부가 돈줄 쥐고 대학 길들이기 안 변해" 불만 #국정과제 추진 시 현장 목소리 반영 필요

 지난 19일 오후 서울역 인근 한국장학재단 서울사무소 회의실. 이진석 교육부 대학정책실장 직무대리가 모임 취지를 설명하자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들은 대입 전형료 수입 상위 25개 대학의 입학처장들이었다.

 이날 처장들 대다수는 “이미 수시모집 요강을 발표했고, 예산 집행도 시작한 상황이라 올해는 인하가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이 실장은 “전형료 인하에 동참하지 않으면 실태 점검 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다. 올해 각 대학의 전형료 인하율을 내년도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또 이 실장은 회의 막바지에 “언론에는 원론적인 부분만 전달될 수 있게 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서울 A사립대의 입학처장은 “멱살만 안 잡았을 뿐 전형료를 내리지 않으면 큰일 날 줄 알라고 협박하는 듯했다”고 전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올해부터 대입 전형료 부담을 낮추겠다”고 발언한 이후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겉으로는 ‘대학 자율’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으로는 실태조사·재정지원사업 등과 연계해 가히 옥죄는 분위기라는 불만이 대학들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자료: 2017 교육부 대학정보공시자료

자료: 2017 교육부 대학정보공시자료

 이 같은 상황은 교육부가 25개 대학 입학처장 간담회에 맞춰 각 대학에 보낸 공문에서도 확인된다. ‘대입전형료 투명성 제고(인하) 추진계획’이란 제목의 공문에서 교육부는 “대입 전형료의 자율적인 인하를 독려한다"면서도 "다음달 4일까지 전형료 인하 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또 교육부는 공문에 첨부한 ‘입학전형료 인하 시행계획 제출서식’에 ‘25% 삭감’을 예시로 들었다. 대학가에선 교육부가 사실상 25% 이상의 인하를 요구한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이주희 교육부 대입제도과장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서울 B사립대 입학처장은 “자체 인하방안을 제출하라고 하면 될 일을 예시까지 제시한 것은 교육부가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재정지원과 연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대입전형료를 25% 이상 낮추자니 재정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반대의 경우 교육부에 찍혀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C사립대의 입학처장은 “내부적으로 얼마나 인하가 가능한지 조율해 본 뒤 다른 대학 분위기를 살펴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 세번째)은 지난 1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장호성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오른쪽 두번째) 등 대학총장들을 만났다. [연합뉴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 세번째)은 지난 1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장호성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오른쪽 두번째) 등 대학총장들을 만났다. [연합뉴스]

 대학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대학 재정을 압박하면 그 피해가 학생·학부모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서울 D대학의 입학사정관은 “전형료 수입이 감소되면 입시 설명회 횟수도 줄일 수 밖에 없다. 학생·학부모가 대입정보를 얻을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고 말했다. 지방 4년제 대학의 한 입학처장은 “전형료를 줄이면 학생을 평가하는데 투입되는 인원 수도 감소한다. 그만큼 입시의 공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밝혔다.

 평가와 재정 지원을 통해 대학을 압박하는 교육부의 업무 방식이 이전 정부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MB정부 때는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 박근혜 정부 때는 대학 정원 감축 등을 각종 재정 지원사업과 연계해 정책을 밀어 부친바 있다. 서울 E사립대의 입학사정관은 “정권 교체 이후 대학 자율성이 보장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가 대학을 규제하기 시작하면 대학은 창의성을 잃고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도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해 세부 실행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j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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