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불가, 해외 OK...문재인 정부의 '원전 이중플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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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주요 기업인들을 초청해 개최한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미팅'에서 참석한 기업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원 두산 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문 대통령, 구본준 LG 부회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주요 기업인들을 초청해 개최한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미팅'에서 참석한 기업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원 두산 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문 대통령, 구본준 LG 부회장. [연합뉴스]

 지난 27일 청와대 상춘재 앞 녹지원, 문재인 대통령과 국내 대표 기업인들의 첫 만남이 있었다. 노타이 차림으로 맥주도 한잔 곁들이는 화기애애한 자리에서 박정원 두산 회장이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중단하면 주기기를 공급하는 두산중공업의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이 자사 기업에 불이익이 된다는 얘기를 어렵게 꺼낸 셈이었다. 뒤이어 박 회장이 “(매출을 만회하기 위해) 해외에서 사업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외 진출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원전 사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원전이 국내에 건설되는 건 반대하지만, 그 원전이 해외로 나가는 건 괜찮다’로 해석되는 발언이었다.

 국내ㆍ외 원전에 대한 모순된 시각은 주무 부처 장관도 비슷하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6일 국회 산업자원통상중소벤처기업위에 출석해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를 거듭 밝혔다. 하지만 박재호 민주당 의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이 직접 아랍에미리트(UAE)에 현지 로비까지 벌인 끝에 원전 4기 수출을 했는데 원전 수출을 현 정부가 반대하고 있나”고 묻자 “전혀 반대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국회에 참석한 조환익 한전 사장 또한 “산자부 장관께서 해외 원전 수출에 대해 정부로서 최대한 역할을 하겠다 했다”고 전했다. 현재 한전은 21조원 규모의 영국 원전 3기 중 1기를 수주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위원회가 26일 국회에서 열렸다. 조환익 한전사장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앞은 백운규 산자부 장관.강정현 기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위원회가 26일 국회에서 열렸다. 조환익 한전사장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앞은 백운규 산자부 장관.강정현 기자

 사실 문 대통령의 탈원전 철학은 일관됐다. 후보 시절 공약에서도, 취임 이후 100대 국정과제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 사회 구축이 최우선 국정전략”이라고 했다. 에너지에서도 천박한 ‘돈’보다 지고지순한 ‘생명’ 중시하겠다는 걸 누가 반대하랴. 심지어 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 회의에선 이런 언급까지 했다. “고리 1호기 영구중단 행사 때 들으니 (지역 주민들은) 지진 때 집안에만 있으려니 집이 무너질까 두렵고, 밖으로 나가자니 방사능이 유출된 것은 아닌지 두려운데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방사능 유출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원전의 위험성을 새삼 환기한 것이었다. 근데 왜 원전의 해외 진출에 대해선 유독 관대한 것일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몇년전 외국인에게 17개의 단어를 주고 “대한민국하면 뭐가 떠오르는가”라는 설문 조사를 했다. 결과는 1위 고속성장, 2위 첨단기술이었다. 17위 꼴찌는 국제사회 기여(contribution to the international community)였다. 다른 말로 하면 ‘단기간에 경제성장해 잘 살긴 하지만, 가난한 나라를 잘 돕지 않는 국제 기여도가 낮은 나라’라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가 실행으로 옮겨지면서 많은 논란을 부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겐 위험한 것을 오히려 외국에 파는 일에 적극적이라면 그건 모순이란 비판을 피할 수 있을까. 청와대 상춘재에서 문 대통령과 박정원 회장의 대화, 그리고 국회에서 백운규 장관과 조환익 한전 사장의 원전 수출에 대한 인식을 보면서 내내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밀어붙이는 일이지만 행여 ‘이중플레이'한다는 비판이 부메랑으로 돌아올까봐서였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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