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과 우리는 너무 달라…여성단체 “여성의 ‘몸 다양성’ 보장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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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과 일반인의 몸은 얼마나 다를까.

26일 서울 명동역에서 열린 여성단체의 '문제는 마네킹이야' 기자회견에서 한 회원이 마네킹 사이즈의 단면을 통과하기 위해 까치발을 든 채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준호 기자

26일 서울 명동역에서 열린 여성단체의 '문제는 마네킹이야' 기자회견에서 한 회원이 마네킹 사이즈의 단면을 통과하기 위해 까치발을 든 채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준호 기자

26일 오전 서울 명동역 앞에서 한 여성단체 회원이 마네킹의 단면을 통과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얼굴은 마네킹의 목에 닿았고, 폭이 좁아 다리 하나를 내놓는 것도 힘겨워했다.

퍼포먼스를 기획한 여성환경연대 등 7개 여성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는 마네킹”이라며 “여성의 건강권과 몸 다양성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26일 서울 명동역 앞에서 열린 여성 건강권과 몸 다양성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 '문제는 마네킹이야'에서 참가자들이 다양한 체형의 마네킹 제작, 전시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서울 명동역 앞에서 열린 여성 건강권과 몸 다양성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 '문제는 마네킹이야'에서 참가자들이 다양한 체형의 마네킹 제작, 전시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기술표준원이 2015년에 실시한 7차 인체치수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20~24세 여성 평균 키는 161㎝, 허리둘레는 71㎝다. 반면 마네킹의 사이즈는 이와 동떨어진 키 178㎝에 허리 61㎝의 사이즈로 제작됐다고 여성단체들은 주장했다.

여성환경연대는 “‘마네킹 같은 몸매’를 칭송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일상과 노동환경에서의 몸매 압박, 외모 품평, 자기 몸에 대한 불만족과 혐오를 만든다”며 “이는 여성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여성에게 길고 마른 몸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여성의 인권ㆍ노동권ㆍ건강권을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26일 서울 명동역 인근의 한 의류매장 유리를 통해 여성 건강권과 몸 다양성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서울 명동역 인근의 한 의류매장 유리를 통해 여성 건강권과 몸 다양성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이달 초 31개 의류 브랜드의 5개 품목(반팔ㆍ블라우스ㆍ바지ㆍ치마ㆍ원피스)에 속한 제품 13종에 대해 ‘사이즈 다양성’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 결과 총 7개의 사이즈(XXSㆍXSㆍSㆍMㆍLㆍXLㆍXXL) 중 SㆍMㆍL나 XSㆍSㆍM 등 3가지만 갖춘 브랜드가 31개 중 23개(74%)였다. 이 중 국내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71%였다. 경진주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는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외모에 대한 압박과 잣대가 심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의류 브랜드가 제멋대로 정한 ‘표준 체형’ 이외의 신체는 삶의 필수품인 의복을 구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날 회견에 참여한 아영 불꽃페미액션 집행위원은 “사람을 본떠 마네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네킹을 본떠 사람을 만드는 게 한국 사회”라며 “사람이 옷에 몸을 맞추는 비인간적인 행태를 지속해선 안된다”고 꼬집었다. 윤소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도 “자기관리라는 이름으로 외모차별이 합리화되고 있다. 외모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말과 실천을 꾸준히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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