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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자동차의 빅뱅 … 자율주행차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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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의 4차 산업혁명

경비가 삼엄했다. 스마트폰이 봉인되고서야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진입이 가능했다. 여러 보안 절차를 거쳐 시승이 예약된 자율주행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차를 보자마자 호기심보다는 의구심이 먼저 떠올랐다. 운전자가 손발 떼도 차가 굴러간다는 건데 시승 차는 아무리 봐도 평범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해치백 승용차 아이오닉이었다. 더구나 연구소 내 4차로 도로에는 위장막을 덮고 테스트 중인 차들이 사정없이 달리는 터라 은근히 겁도 났다.

자율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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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반신반의하면서 조수석에 올라탔다. 자율주행차 운행허가 규정에 따라 연구원이 운전석에 동승했다. 차 내부에 특이한 장치라곤 조수석 앞에 설치된 모니터 한 대뿐이었다. 자율주행에 필요한 도로 정보를 보여주는 장치다. 자율주행 버튼을 누르자 차가 부드럽게 전진했다. 바로 과속 방지용 도로 턱이 나왔다. 스스로 감속하더니 부드럽게 넘어갔다. 그때 전방에 있는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차는 스스로 제동해 멈춰 섰다. 그때부터 12분에 걸친 5㎞ 구간 자율주행이 본격화했다. 연구소 내 최고 시속(40㎞)까지 속도를 높이자 즉시 긴장하게 됐다.

자율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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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이 1차로로 줄어들자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그때 반대 차선에서 트럭이 달려왔다. 등골이 오싹했지만 자율주행차는 무사히 나갔다. 안도할 틈도 없어 P턴 코스로 접어들었다. 버스를 비롯해 여러 차량이 몰리면서 도로 상황이 복잡해졌지만 차는 스스로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했다. 그러더니 적당한 속도로 P턴을 마치고 주행을 계속했다. 곧바로 급격한 S자 길 주행 능력을 보는 곡률 시험 구간에서도 탑승자 쏠림 현상은 없었다. 자율주행차 시승은 한마디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을 실감하게 했다. 많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손발 떼고 버튼 누르자 스스로 전진 #P턴·S자 곡선서도 쏠림현상 없어 #내연기관 가고 전기차와 결합해 #거대한 자율주행차 생태계 창출 #반도체 칩과 SW가 차 산업 지배 #특정 구간·지역 10년 내 실용화

운전자가 핸들과 브레이크에서 손발을 뗀 채로 차가 달리고 있다. 잠을 자더라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자율주행차는 4차 산업혁명을 가장 실감하게 될 분야다. [사진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

운전자가 핸들과 브레이크에서 손발을 뗀 채로 차가 달리고 있다. 잠을 자더라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자율주행차는 4차 산업혁명을 가장 실감하게 될 분야다. [사진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

우선 자율주행차의 상용화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원리는 간단하다. 차량에 물체를 인식하는 각종 센서를 장착하고 이를 통해 실시간 확보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차에 갈 건지, 멈출 건지를 판단 제어하게 하는 알고리즘 체계만 확보하면 된다. 센서는 200m 전방 물체를 인식하는 라이더(Lidar·레이저 스캐너)와 옆에서 다가오는 물체를 인식하는 레이더(Radar)로 구성된다. 라이더와 레이더는 각각 레이저와 전자파를 쏘아 돌아오는 속도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외부환경을 3차원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준다. 사용하는 주파수가 다른데, 라이더는 레이저 프린터가 1초에 수백 번 조밀하게 찍듯이 차량 전방을 그대로 스캔한다. 이 같은 라이더는 차량 앞 범퍼 양 끝단과 앞 유리창 상단 부를 포함해 모두 3개가 장착돼 전방을 끊임없이 감지한다. 신호등은 카메라를 통해 인식한다. 여기에 정밀 내비게이션으로 차량의 위치를 파악한다.

자율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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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원리로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아이오닉은 경기도 화성 남양연구소뿐만 아니라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실제 도심 상황에서 주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아이오닉은 미국자동차공학회(SAE)가 정한 자율주행 0∼5단계에서 4단계 수준의 자율주행을 달성했다. 이는 운전자가 운전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자율주행 시스템이 정해진 상황에서 차량의 속도와 방향을 통제하는 적극적인 주행이다. 5단계는 목적지를 입력하면 주차장에서부터 목적지까지 ‘도어 투 도어’로 알아서 가는 최고 수준인데 그 직전 단계인 것이다. 현대차 남양연구소는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국내에서도 일반도로 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계속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소해나가면서 자율주행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권형근 현대자동차 지능형안전연구팀장).

자율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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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율주행 상용화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좀더 엄밀한 기술적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금세 실현되기가 어렵다. 폭우나 폭설이 쏟아져도 문제다.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뀔 때 인식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물론 반응속도가 느리긴 해도 각종 센서의 성능이 개선되고 있고, 주행 속도를 감속하는 방식으로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센서의 상용화가 걸림돌이다. 먼 물체를 인식하는 라이더의 값은 3000만원으로 웬만한 차 한 대 값이다.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다. 현재 도로교통법은 운전자 없는 차량 운행이 허용되지 않는다. 공상과학영화 ‘토탈리콜’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보여준 미래의 완전 자율주행차의 세계가 되려면 적합한 도로 환경과 해킹을 막기 위한 보안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자율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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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운전자 없는 완전 자율주행이 되려면 갈 길이 멀다. 국내 최초의 ‘도심 자율주행’이라면서 지난달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도로 4㎞ 구간을 돌았던 서울대 자율주행차 ‘스누버’도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드러냈다. 차선을 스스로 바꾸고 옆 차의 끼어들기에 급정거하는 방어운전 능력을 과시했지만 수차례 정지선을 넘어서는 등 신호 감지에 허점을 보여줬다. 스누버의 50m 이내 신호 판독률은 90%인데, 이는 자율주행차의 판독 성능으로는 아직 미흡하다.

자율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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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만간 등장할 자율주행차 대부분은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한 ‘준자율주행차’가 될 것으로 보인다. 0.001%의 리스크만 있어도 운전자가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조사업체 내비건트 리서치는 자율주행차가 전체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1.1%에서 2035년에는 85.7%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수로는 1만 대에서 1억 대로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대다수는 준자율주행차라고 봐야 한다.

자율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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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율주행차는 4차 산업혁명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분야다. 일정 시범도시나 시범구간에서 10년 내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자율주행차는 움직이는 스마트폰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플·구글·테슬라는 물론 삼성전자·KT·네이버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이유다. 이는 1920년대 포드 T모델로 본격화한 100년 자동차산업의 빅뱅을 의미한다. 프랑스가 2040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고 전기자동차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것과 맞물려 자동차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다.

기존 자동차는 엔진이 생명이었지만 자율주행차는 센서를 제어하는 반도체칩과 소프트웨어가 중요해진다. 여기에 통신을 기반으로 인터넷이 연결되면 커넥티드(connected) 카이자 스마트(smart) 카가 되는 것이다. 영화 감상이 가능한 것은 물론 실시간으로 맥박이나 혈압 등 생체 변화 측정도 가능해진다. 만도와 현대모비스 같은 부품회사는 라이더를 비롯해 이에 필요한 부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거대한 자율주행차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