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구치소에서 담배 한 개비에 7만원씩 네 번 사서 피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의 세상만사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내 여동생이 석방됐어. 환영 회식하는데 서촌의 고깃집으로 오시오.”

돈 받고 빨래, 청소, 라면 끓여주고 #우표가 화폐처럼 지불 수단 둔갑 #“국정 농단 인사의 독방 수감 때 #‘시다바리’ 했다는 여성도 만났다” #“사실상 물리적으로 불가능 #제기된 의혹 진상 조사하겠다”

최근 ‘아는 형님’의 연락을 받고 간 자리에서 40대 초반 여성 K가 일어나 인사를 한다. K는 수개월간 미결수로 구치소에서 지내다 집행유예를 받고 출소했다. 그녀가 털어놓은 구치소 경험담은 충격적이었다. “구치소도 사람 사는 데더라고요. 담배요? 한 개비에 7만원 주고 사서 피웠어요. 수감 기간 동안 4개비 사 피웠으니 28만원 쓴 거죠.” 진짜일까,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생활의 기억’들을 접하면서 기자 정신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K는 자발적으로 증언하며 동영상 촬영에도 응했다.

시중에서 담배 한 갑은 4500원이다. 한 개비에 225원 정도다. 그게 구치소에 들어가 311배로 뛴 셈이다. 희소가치, 즉 일종의 위험수당이 붙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구치소 접견실에서 송창수 이숨투자자문 대표(41)에게 담배 가루가 든 볼펜을 몰래 건넨 변호사가 적발돼 충격을 주었다. 실제로 교도관이 담배 장사를 하다 파면을 당했다든지, 수감자에게 약점이 잡혀 휴대전화를 건넸다든지 하는 뉴스는 잊을 만하면 신문 지상에 오르내린다.

K는 스스로 담배 구입 경위를 설명했다. “구치소 입감 후 한 달쯤 됐을 때 새벽에 담배 냄새가 났다. 저게 뭐냐고 ‘사소’에게 물었더니 모른 척하더라. 그날 밤 사소가 ‘언니도 담배 피워? 필요해?’라고 물어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며칠 뒤 밤에 교도관 근무 주임이 나를 불러내 평소 운동을 하던 잔디밭 쪽으로 가라고 했다. 이내 주임은 사라졌다. 그리 갔더니 죄수복을 입은 사람이 ‘나는 독방에 있다’고 말한 뒤 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다. 하나에 7만원이라고 했다. 일단 피웠다. 돈은 나중에 우표로 정산했다.”(※사소란 ‘사동 소지’의 준말. 소지는 ‘청소부’라는 뜻의 일본어다. 교정기관이 기결수 중에서 선발해 음식 배식·청소 등을 맡기고 월 3만원가량을 준다. 말썽 부릴 소지가 큰 5대 강력범은 배제된다. 경제사범, 사기·절도범, 특정 종교 신봉자 등이 주로 맡는다.)

우표로 대가를 지불한다니 무슨 말인가.
“원래 구치소엔 돈 반입 금지다. 물품이 필요하면 먼저 신청·구매한 뒤 본인의 영치금 계좌(한도 300만원)에서 정산한다. 그런데 돈 대신 우표가 화폐처럼 활용되고 있었다. 주로 용역(서비스) 거래에 쓰였다. 구치소 한 방에 13~14명씩 생활한다. 배식·설거지·청소 등 당번을 돌아가며 한다. 당번을 하기 싫으면 방의 신입이나 사소에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우표로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 나 같은 경우 팬티·속티 등 개인 빨래는 5000원, 당번까지 세트로 하면 2만원을 줬다. 가격은 방마다 다르다. 라면 끓여 주고 어느 방에선 5000원을, 다른 방에선 1만원을 받는다. 우표 대신 로션 등 고가의 물건을 사서 주기도 했다.”
우표 구입은 어떻게 했나.
“우표는 일주일에 한 번 구치소 내 우체국에서 영치금으로 신청해 구매한다. 일반 편지에는 330원짜리가, 빠른 등기우편에는 1360원짜리가 쓰인다. 가격대별로 우표를 100장, 200장씩 사 두고 썼다. 어떤 때는 60만원어치를 산 적도 있다.”
현금화는 어떻게 하나.
“우표깡이 이뤄진다. 우표를 모아 편지에 넣어서 외부 업체로 보내면 일정 수수료를 떼고 영치금으로 입금시키는 식이다. 구치소로 들어오는 편지는 검열하지만 나가는 편지는 검열하지 않기에 가능한 것 같았다.”

K는 구치소에서 한 국정 농단 주역을 도와준 여성 재소자도 만났다고 증언했다. “서울구치소에 한 달 반가량 있을 때 그 인사의 독방에 들어가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언니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그 언니 말이 ‘빨래·청소 등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말로 ‘시다바리’ 역할을 해주고 대가는 영치금으로 받았다고 했다.”

그녀의 진술이 긴가민가해서 다른 교도소 경험자들을 취재했다.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총 7년간 수감생활을 했다는 박모(43)씨의 경험담도 비슷했다. “전국의 교도소들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돈이 많다든지 힘이 세다든지 하면 편하다. 예를 들어 거물급 인사가 입감하면 전체가 술렁거린다. 일단 전담 소지(*사소를 소지로 표현)가 한 명 붙는다. 빨래 등을 해 준 소지에겐 영치금을 넣어준다. 내가 있을 때 만난 소지에게 대기업 비서실이 3000만원을 부쳐 줬다고 한다. 몇 해 전 모 회장이 의정부교도소로 이감됐을 때도 거기가 ‘재소자들의 천국’이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직접 경험한 특이한 일이 있는가.
“정·재계 인물들, 소위 ‘범털’들이 서울구치소에 줄줄이 수감돼 있을 때 나도 거기 있었다. 지방 교도소에 있을 땐 방 동료가 생일이라고 해서 취사장 반장에게 얘기해 술과 음식을 조달해 축하해줬다. 그런 날을 포함해 음식을 풍부하게 먹는 날은 추석·설날 등 1년에 세 차례 정도다. 교도관들도 어설픈 사람 방장 안 시킨다. 통제가 잘돼야 자기들도 편하지 않겠나.”
교도소 내 담배 유통은.
“지방과 서울은 담뱃값도 차이가 난다. 내가 있던 지방 교도소에선 한 갑에 10만원에 샀다. 방 동료 13명 중에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그에게 한 번 피우라고 꼭 시켰다. 공범이 돼야 신고 안 한다. 걸리면 운동장에 떨어져 있는 걸 주웠다고 진술해 교도관을 보호해 준다. 그래야 은밀한 거래가 깨지지 않는다.”
담뱃값 지불은.
“친구나 가족이 면회를 오면 손바닥에 볼펜으로 계좌번호·예금주·금액을 적어서 딱 보여주면 무슨 말인지 알고 적어 가 입금했다.”
요즘 영화 등에선 ‘교도소보다 세상이 더 흉포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예전과 달리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 대구 3세 아이 개목줄 학대 치사 사건처럼 엽기적 사건이 많이 벌어진다. 조폭도 아닌데 멀쩡한 일반인들이 사람을 죽인다. 하지만 아무리 바깥 세상이 무섭다고 해도 교도소에서 안 나가려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솔직히 두 남녀의 진술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른다. 만약 사실이라면 교정 당국의 교정이 필요해 보인다. 이에 대해 해당 구치소 관계자는 “여성 출소자의 말대로 담배 한 개비에 7만원씩에 거래된 게 사실이라면 쇼킹한 일”이라며 “그러나 야간근무 시간인 10시 이후 근무 교도관이 수용 방에서 사람을 불러내 운동장 잔디밭까지 가는 데는 4개의 문을 따야 해 사실상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2008년 형집행법에 주류·담배·현금·수표 등을 반입·유통하는 데 관여할 경우 6개월 이하 징역 등으로 형사처벌하는 쪽으로 규정이 강화되면서 그런 모험을 하는 사례가 거의 사라졌다”며 “여성 교도관이 적발된 경우는 더더욱 없다”고 덧붙였다. 구치소 측은 그럼에도 의혹이 제기된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