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 속에 엿보이는 아파르트헤이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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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30면

소통 카페

“XX 같은 XX 너는 생긴 것부터 뚱해서 XX야 살쪄서 미쳐서 다니면서 XX같은 XX” “아비가 뭐하는 X인데 제대로 못 가르치고 그러는 거야.” “주둥아리 닥쳐” “내가 하라면 해.” 최근 보도된 제약회사 2세 회장이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했다는 상습적인 폭언의 일부다. 외모 비하, 부모 모독, 교통법 무시, 봉건사상 등 시대착오적 유습에 절어 있다.

폭언은 인격을 모독하고 자존심을 파괴하는 언어적 공격행위다. 언어공격 연구자 아브지와 랜서에 따르면 공격의 유형은 인격·능력·경력에 대한 공격, 저주, 괴롭힘, 희롱, 조롱, 모독, 위협 등 다양하다. 폭언을 당하면 감정을 다치고, 당황과 분노감으로 적절한 행동을 못하고 인격도 파괴된다. 조직 차원에서도 직업과 직장과 동료에 대한 만족도충성도헌신감유대감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언어공격 행위가 대한민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97년 노르웨이 엔지니어들의 75%, 2002년 캐나다 공공부문 고용인의 69%, 2000년 미국 노동자의 약 50%가 직장에서 심리적 괴롭힘을 경험했다.

이른바 선진 사회문화권에서도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또한 가해자는 남성이고, 피해자 보다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으며, 매일매일 피해자와 함께 얼굴을 맞대는 관계라는 보편적인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대한민국 재벌 2세들의 지속적인 갑질 폭언은 한국적 특징이라고 할 만큼 독특함을 보인다. 회사가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월급을 준다고 생각하고, 고용인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주종관계를 강요한다. 대금을 치르고 구입한 흑인을 사람이 아니라 사유물 노예로 취급하는 태도이다.

무지몽매한 일부일지라도 재벌 2세가 저지르는 언어공격 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천민자본주의 행태를 넘어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의 망령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능력이나 인격이 아니라 피부의 색에 따라 인간을 나누고 차별하는 사악한 제도와, 돈을 무기로 인간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폭언은 다를 게 없다.

재벌 2세들이 누리는 돈은 개인소득이 100달러도 안되던 가난한 시절에 그들의 부모와 대한민국의 국민이 함께 힘을 합쳐 이룬 한강의 기적이 가져온 수혜물이다. 자신들의 돈벼락에 배어 있는 피와 땀을 외면한 채 안하무인의 영혼 없는 폭언으로 타인의 인격과 공동체의 정의를 더 이상 해치게 해서는 안 된다.

폭언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별개의 사례로 분리하지 말고 반사회적 범죄로 단호하게 다루어야 한다. 폭언의 갑질로 기소된 2세들이 그들에게는 코끼리 비스킷 같은 액수의 벌금 납부로 상황이 종료되는 ‘유전무죄’식 처벌로는 폭언의 행진을 멈출 수 없다.

처벌의 수위를 강화해야 하는 것은 물론 효율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소통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하고 소통과 관련된 사회봉사를 강제하는 방안을 강구해 봄 직하다. 소통에 대한 교육을 초등학교 때부터 해 보자. 폭언은 멀어지고 소통은 가까워지는 길이다.

김정기
한양대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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