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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마을회관 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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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울산시 달곡마을(무룡동)과 제전마을(구유동)은 각각 1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동네다. 달곡마을은 농업, 제전마을은 어업이 주업이다. 여느 농어촌처럼 주민 대다수가 60대 이상이다. 틈틈이 마을회관에 모여 사람 사는 정을 나눈다. 두 동네 어르신들은 지난해부터 몇 차례 회의를 열었다. “마을회관을 박물관으로 만들면 어떨까. 우리가 살아온 흔적을 모아봅시다.”

오늘 두 마을에서 소담한 박물관이 문을 연다. 달곡마을은 복지회관 2층 헬스장을, 제전마을은 마을회관 2층 회의장을 박물관으로 꾸몄다. 집집마다 십시일반 물건을 내놓았다. 각 마을 통장이 명예관장을 맡았다. 달곡마을 이용성(56) 통장은 옛 농사정보지와 모내기 때 신는 ‘물신’(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장화)을, 제전마을 김찬식(55) 통장은 장어통발 등 어구를 기증했다.

이런 걸 전시해도 될까, 처음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모아놓고 보니 훌륭했다. 달곡마을은 모를 기르는 모상자로 박물관을 연출했고, 동네 곳곳에 벽화도 그렸다. 제전마을은 해녀문화에 집중했다. 미역·전복·돌김 등을 채취해온 ‘삶의 현장’을 재연했다. 이용성 통장은 “우리 마을은 학성 이씨와 아산 장씨의 집성촌이다. 역사가 400여 년에 이른다. 외지인이 어떤 감흥을 받을지 기대가 크다”고 했다.

주민들은 전문가 도움도 받았다. 지난 한 해 동안 이곳 생활상을 조사한 국립민속박물관 연구팀이 박물관 설립을 제안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박물관을 만들어보자며 전시 기획·구성 등을 거들었다. 민관의 바람직한 동행이다. 김찬식 통장은 “부모 세대부터 살아온 모습을 돌아보니 가슴 뭉클하다. 후손들이 잘 간직했으면 한다”고 했다.

올해 지방축제 몇 곳을 다녀온 적이 있다. 전남 광양 매화축제, 경기 남양주 퇴촌 토마토축제 등등. 분위기는 왁자했으나 실망도 컸다. ‘먹자, 마시자’에 가려 지역 고유색을 제대로 맛볼 수 없었다. 소위 콘텐트가 달렸다. 하지만 콘텐트가 별건가.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텔링’도 마찬가지다. 그곳,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콘텐트다. 큰 시설, 큰 예산이 다가 아니다. 지방문화 활성화는 주민 참여에 달려 있다. 울산의 두 작은 박물관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