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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문재인식 ‘쇼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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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정치부 차장

고정애 정치부 차장

불과 수백 분의 1초의 순간이 수백 마디의 말을 건넬 때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2012년 6월 새누리당 의원연찬회 사진이 그랬다. 다들 흰 상의 차림이었는데 정중앙에 연두색 상의가 돌출해 있었다. 주인공을 짐작할 게다. 당이 “흰옷을 착용하라”고 통보했다는데, 결과적으로 100여 명의 의원들은 그저 하얀 망점에 불과했다.

최근에도 묘한 사진을 봤다. 19일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발표 장면이었다. 노타이에 무선 마이크, 화려한 그래픽과 영상, 많은 이들이 스티브 잡스를 떠올릴 정도로 현란한 볼거리였다. 문 대통령을 뷰파인더에 담기에 바빴을 청와대 사진기자들은 그럼에도 시선을 돌려 문 대통령을 아웃포커스 하며 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췄다. 탁현민 행정관이다. 두 명의 장관과 여당 의원들, 문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여성단체들이 그의 해임을 요구하자 문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시인 등이 공개 두둔했다. 정작 임면권자인 대통령은 가타부타 말이 없는데 행정관 신분임에도 언론에 “조만간 청와대 생활을 정리하겠다”고 말한 요지경 속 주인공이다.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이질감이다. 이런 현상은 탁 행정관의 사례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소통’ 행보는 세련되다. 때로는 인간적이고 때론 감동적이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다른 풍경이다. 인재풀은 편협하고 탈원전·비정규직 등 정책 추진은 일방적이며 돈 얘기는 미덥지 못하다. 사정의 칼날은 둔탁하고 때론 졸렬하다.

소통은 만난다, 듣는다는 행위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로 인한 변화도 내포한다. 현재로선 그러나 ‘내가 옳으니 나를 따르는 게 선(善)’이란 식이 아닌가. 일각에서 ‘쇼통’이란 푸념이 나오는 까닭이다. 쇼(show)에 능할 뿐이란 의심이다.

문 대통령에게 들려주고픈 얘기가 있다. 지난달 미국에서 만났을 낸시 펠로시 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이다. “워싱턴에는 무료로 울타리의 가지치기를 해주는 서비스가 있다. 사람들이 당신을 볼 수 있게 오랫동안 (울타리 밖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다. 그런데 그 시간이 길어지면 가지치기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당신의 머리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질 거다.” 외양엔 금방 둔감해진다.

고정애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