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4차 산업혁명과 금융의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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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신상훈 전 신한은행장

신상훈 전 신한은행장

평소 알고 지내는 일본 통산성의 N국장과 일본 국제금융센터의 Y연구실장을 얼마전 만났다. 이들을 통해 일본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총리 직속으로 정책총괄기구를 설치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정부도 4차 산업혁명을 경제운용의 핵심축으로 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책을 구사하느냐다. 우리 경제 규모와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을 고려하면 과거처럼 ‘Me Too’ 전략을 구사해서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일본처럼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부문에 대해서는 시장에 맡기되,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필요한 산업부문에는 정부가 선제적으로 관여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금융산업 역시 4차 산업혁명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기존 대형 금융회사들이 변화를 선도하는걸 기대하는 건 어렵다. 금융산업 특유의 보수성에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경영 관행을 고려하면 그렇다.

따라서 금융산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정책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론 기존 금융 질서가 흔들리지 않도록 금융정책의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경쟁의 터전과 룰을 추가하는 투트랙 전략으로의 전환을 주문하고 싶다. 제어와 자율 정책을 유연하게 구사했으면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선 특정 기술영역에 특화한 소규모 금융회사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핀테크 기업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이 기득권과 관행에 젖은 대형 금융회사에 자극을 줘 금융산업 전체가 변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기존 대형 금융회사에도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금융질서를 유지하면서 실물경제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뒤돌아볼 것은 김대중(DJ) 정부 때의 외환위기 극복 경험이다. DJ정부는 외환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했지만, 쏠림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IT버블을 야기하고 말았다. 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4차 산업혁명 지원을 전담할 금융회사를 지정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특정 국책 금융회사를 전담 기관으로 지정한 뒤 정부의 지원금을 집중시켜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지원하게 하면 어떨까 한다.

이렇게 되면 4차 산업혁명 전담 국책 금융회사, 기존 대형 금융회사, 소규모 창의적 금융회사가 어우러져 4차 산업혁명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선도하는 금융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신상훈 전 신한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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