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특검 구인에도 이재용 재판 불출석…‘윈-윈’ 전략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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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끝내 법정에 오지 않았다. 19일 법원으로부터 구인장을 발부받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서울구치소로 가 구인을 시도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버텨 포기했다.

"특검·검찰 입증 어렵게 하는 고도의 변호 전략" #"혐의 부인 기회 놓쳐 불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 재판에 증인 출석을 거부한 것은 지난 5일에 이어 두 번째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이 자신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을 때도 ‘발가락 부상’을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했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이 부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

법조게에선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만남을 피하는 것이 ‘윈-윈’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주게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는 박 전 대통령과 뇌물을 줬다는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의 공소장에 적힌 범죄사실은 동일하다. 한 사람의 범죄 혐의가 인정되면 다른 사람의 유죄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질 수밖에 없는 관계다. 뇌물 혐의에 관한 검찰의 기소 내용을 둘러싸고 두 사람의 진술이 어긋나면 재판부는 두 사람이 한 진술의 신빙성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특검팀이 '부정한 청탁' 의 현장이라고 지목한 2015~2016년 3차례의 독대 상황과 관련해선 변호 전략상 진술을 일치시키는 게 두 사람 모두에게 득이 되는 선택이다. '부정한 청탁'이 인정되느냐는 각각 열리는 두 사람의 뇌물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다. '독대'라는 특수 상황의 성격상 두 사람의 진술 외에 별다른 증거가 없어 박 대통령이 이 상황에 대해 법정 진술을 하지 않는다면 재판부는 특검팀이 제출한 정황 증거들만을 토대로 유·무죄를 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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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앙포토]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앙포토]

한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선 독대 상황에 대한 증언 한 마디가 재판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그동안 변호인을 앞세워 말을 아껴온 두 사람이 검찰과 특검팀의 질문 세례에 답하다 보면 쌓아온 논리가 무너질 위험이 높은데 굳이 증언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재판을 지켜본 한 변호사도 “박 전 대통령이 그동안 독대 상황 등 핵심 쟁점에 대해 이 부회장 측이 펼쳐온 전략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본인은 입을 다물고 변호 전략의 주도권을 이 부회장 측에 넘기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증인 출석 거부는 이 부회장에 대한 선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의 1심 구속만료일이 다음달 27일이고 다음달 4일에 결심이 예정돼 있어 박 전 대통령이 출석을 거부한다고 해서 재판부가 심리를 연장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런 가운데 증인 불출석이 오히려 박 전 대통령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검찰과 특검팀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줬다’는 것은 중요한 감형 요인"이라며 "무죄가 되면 모를까 유죄가 나면 양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상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법정에 나오지 않을 경우 재판부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또는 7일 이내의 감치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지난 5월 박 전 대통령이 이영선 전 행정관의 의료법 위반 방조 혐의 재판에 나오지 않자 당시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증인 채택을 철회하고 심리를 종결했다. 과태료를 부과하지는 않았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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