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증인' 논란, 공정위원장 증언...반전과 공방 거듭하는 삼성 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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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농단 사건 재판의 핵심 중 하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재판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증인의 출석과 증언 등이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부정한 청탁' 존재 놓고 삼성vs특검 공방 #정유라,김상조 등 증언 비중에 관심

최근엔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돌발적인 법정 증언(12일), 자타공인 '삼성 저격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증인 출석(14일), 청와대의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 문건 제공(14일) 등의 변수가 잇따라 등장했다.

법조계에서는 “특검팀과 삼성이 혈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세 곳(정씨, 김 위원장, 청와대)에서 특검팀에 대한 엄호 사격을 해주는 모습”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신의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신의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에서 이 부회장 측과 특검팀이 혈투를 벌이는 전선은 ‘제3자 뇌물죄’의 구성에 반드시 필요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를 놓고 형성됐다.

특검팀은 ‘승계 현안→독대→정부 지원’의 구조가 드러났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까지 입증할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삼성 측은 두 사람 사이의 구체적인 청탁이 오고간 증거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반전 계속되는 법정

재판 중반까지 특검팀은 애를 먹었다. 기소 단계부터 내재된 약점이 있었다. 특검팀은 공소장에 이 부회장의 혐의 사실을 표현하면서 “현 정부 임기 내에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문제가 해결되길 희망한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 회사 전환 계획이 승인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등의 대화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오갔다고 인용했다.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기소한 박영수 특별검사. [중앙포토]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기소한 박영수 특별검사. [중앙포토]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지난 4월 7일 첫 재판부터 “정교한 증거 없이 예단과 선입견에 의한 기소”라며 "이 부회장은 (대화 내용을) 부인했고 박 전 대통령은 조사도 안 받았는데 어떻게 공소장에 대화를 직접 인용할 수 있냐”고 파고들었다.
이후 재판은 특검팀의 기소 전략과는 달리 독대 상황에서 구체적 청탁이 있었는지에 집중됐다.

참고인들의 증언 번복

이런 가운데 주요 참고인들의 증언에도 변화가 있었다. 법정에서 증언을 뒤바꿔 '묵시적 청탁’ 입증에 필요한 정황 증거가 약해진 것이다. 지난 5월 31일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의 법정 증언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 전 전무는 특검 조사에서 “최순실이 말의 소유권이 ‘삼성’으로 기재된 것을 보고 ‘삼성도 내가 합치도록 도와줬는데 은혜도 모른다’라고 하는 것을 봤다”고 했지만, 법정에선 "당시 ‘삼성’이라는 단어나 ‘합친다’ ‘합병’ 등의 단어는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특검팀에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6월 '국민연금공단의 (삼성 합병) 의결권 행사와 관련된 사안을 챙겨보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던 최원영 전 고용복지 수석은 지난달 20일 법정에선 "찬성으로 이끌라는 구체적인 지시는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지난 6일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가 특검팀이 제시한 핵심 증거였던 안종범 수첩에 대해 “진술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로만 인정한다”고 밝힌 점도 유죄 입증에 불리한 신호로 해석됐다.

“보쌈증인”vs“자발적 출석” 공방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 씨가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 씨가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눈에 띄는 것은 지난 12일 자신의 변호인도 모르게 재판에 나온 정유라씨의 진술이다. 그는 “(말 교환을)삼성이 몰랐다는 게 의문”이라며 삼성 측의 입장과 배치되는 내용을 진술했다. 자신의 엄마인 최순실씨에게도 불리한 진술이어서 정씨의 증언에 신빙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왔다.

“최순실씨의 강요 때문에 정씨를 지원했다”는 입장을 펴온 삼성 측 변호인들은 "정씨가 구속과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한 진술"이라고 증언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최씨의 변호인은 검찰이 정씨의 출석을 기획했다며 "보쌈증인"이라는 주장도 했다. 이에 특검팀은 "정씨가 자발적으로 출석했다"고 반박했다.

지난 2월 한성대 교수 신분으로 특검팀의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증인 출석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14일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중앙포토]

14일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중앙포토]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에 대한 첫 영장이 기각된 후 특검팀이 최씨가 받은 금품의 성격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대가'에서 '삼성 경영권 승계 현안 전반의 대가'로 확장하는 데 핵심적 기여를 한 게 김 위원장”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4일 법정에서 “공정거래법 등의 집행에서 대통령의 메시지가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이는 특검팀이 같은날 청와대에서 넘겨 받아 분석 중인 '민정비서관실 문건'과 맥락이 닿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1심 구속만료일인 8월 27일 전에 판결을 선고할 계획이다. 유·무죄의 향방에 최근 불거진 반전 요인들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재판부는 여러 증거와 정황을 바탕으로 '묵시적 청탁'의 존재 여부와 대가성을 판단하게 된다.

증언의 유불리와 함께 재판부의 이전 판결도 법조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김진동 부장판사가 지난해 진경준 전 검사장과 김정주 넥슨 NXC 회장 간의 뇌물 사건에서 "두 사람은 일반적인 친한 친구 사이를 넘어 지음(知音)의 관계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한 판결도 그 중 하나다.

진경준 전 검사장 뇌물 혐의에 대한 법원과 검찰 판단. [중앙포토]

진경준 전 검사장 뇌물 혐의에 대한 법원과 검찰 판단. [중앙포토]

서울 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제3자 뇌물죄는 일반적 뇌물 사건보다 대가성에 대한 입증이 까다로운 범죄"라며 "유·무죄 심증 형성에 재판부의 성향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판례가 거론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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