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호주제 대안, 국민 설득이 관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법무부가 이끌고 있는 가족법개정특별위원회가 21일 호주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범정부적 민.관합동체인 '호주제폐지 특별기획단'의 의결을 거쳐 오는 9월 정기국회에 민법개정안을 낸다고 한다. 1960년 민법 시행 이후 여성계가 끈질기게 요구해온 호주제 폐지운동이 마침내 정부 입법안으로 국회에 상정되게 되었다.

우리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호주제 폐지 원칙에 동의하면서, 호주제를 대신할 새로운 안은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국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것을 정부에 주문한다.

현행 호주제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약해졌다고는 해도 나이든 어머니보다 손자를 우대하는 등 불평등한 조항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재혼가정의 자녀들에게 정체성 혼란의 빌미를 주고, 친권자인 어머니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제약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세계 3위의 이혼율, 세계 1위의 저출산율이 의미하듯 현대가정은 지난날의 가정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호주인 할아버지에서 손자까지 동거하는 전통가족은 이미 해체됐고 1인가족.재혼 또는 재재혼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새 가족이 늘어가고 있다.

국민의 생활을 규율하는 법과 제도가 달라진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면 생활의 불편과 고통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 비록 호주제가 우리에게 익숙한 제도라고 하더라도 이미 시대의 변화에 의해 가족관계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진행됐다면 새로운 제도로 이를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새 제도가 지나치게 급진적이어서 국민정서와 심각한 괴리를 보이거나, 실생활에 충격을 가져와서는 안될 것이다. '개인별 신분등록제'는 전통적인 대가족의 개념이 없어졌지만 핵가족의 뼈대가 살아 있다. 새 안이 급진적인 자녀의 부모성 선택권 대신 부성 승계를 원칙으로 한 것은 다행스럽다.

호주제는 우리의 전통.관습과 관련된 것인 만큼 국회 통과를 서두르기보다 공청회.대국민 설명회 등을 충분히 마련해 국민적 합의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