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부 생명 앗아간 버스 과로운전, 6년 전 법 바꿔 막을 기회 놓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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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6년 전 노사가 합의했다면 어땠을까. 지난 9일 부부 2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부고속도로 교통사고 원인으로 버스기사의 과도한 노동시간이 지적되는 가운데 2011년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가 근로시간특례업종개선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설치해 연장근로 한도 설정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당시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법규는 개선되지 않았다.

2011년 근로시간개선위 보고서 #당시 버스기사 74%가 피로 호소 #연장근로 상한선 만들려 했지만 #노사 이견에 법 개정 결국 무산돼

1961년 제정된 특례규정은 97년 ‘행정관청의 승인’이 ‘노사 서면합의’로 바뀌는 등 일부 요건이 개정됐다. 그러나 적용대상 업종은 56년째 그대로이며 연장근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1년 근로시간특례업종개선위원회 당시 공익위원들이 만든 개선안. [위원회 활동보고서 캡처]

2011년 근로시간특례업종개선위원회 당시 공익위원들이 만든 개선안. [위원회 활동보고서 캡처]

2011~2012년 활동한 위원회는 우편업 등 일부 업종은 특례업종에서 제외하고, 버스운전사 등은 특례업종에는 남기되 근로시간 상한을 설정하는 방안을 토론했다. 노동계는 한국노총이, 경영계는 경총 등 사용자 단체가 참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시간 특례업종 범위 조정에는 노사가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연장근로 상한 설정을 놓고 노사가 맞섰다.

중재에 나선 공익위원들은 61년 제정된 12개의 특례업종을 시대 변화에 맞게 한국표준산업분류표 기준에 따라 26개 업종으로 세분화하고 ‘특례 인정 업종’ 10개, ‘특례 제외 업종’ 16개로 분류했다.

특례 인정 업종에는 연장근로 상한을 설정하고, 무제한 연장근로 요건인 노사 서면 합의에도 대상업무, 주당 연장근로시간 한도, 특례실시 방법, 후속조치 등을 명시하게 하는 중재안이 나왔다. 일정 시간 연장근로는 허용하되 주당 연장근로시간의 한도를 정해 놓자는 내용이었다.

당시 공익위원으로 위원회에 참여한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계는 연장근로 한도 설정 이외에 ‘특례규정 폐지’라는 명분을 포기하지 않았고, 경영계는 ‘연장근로를 제한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꺾지 않았다. 접점은 찾아지지 않았고 이후 공익위원안도 수용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노사정이 합의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올라갔다면 특례규정이 개정돼 특례업종 연장근로 제한선이 생겼을 것이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버스기사 119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8.7시간, 일부 시외버스는 주당 67.7시간이었다. 응답자의 73.9%는 과도한 노동시간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했다. 이번에 사고를 낸 버스기사 김모(51)씨는 이틀에 30시간, 1주일에 62시간 정도 근무했다.

운송업계의 한 관계자는 “역사에 가정은 통하지 않지만 당시 연장근로 제한이 생겼다면 이번 사고를 예방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된 집배원의 과도한 연장근로 문제도 특례규정에 그 원인이 있다.

지난 6일 오전에는 21년차 집배원 원모(47)씨가 자신이 근무하던 경기도 안양시 안양우체국 앞에서 분신한 뒤 병원 치료를 받다가 이틀 만에 숨졌다. 동료들은 과도한 우편 물량과 업무 강도를 원씨의 자살 원인으로 꼽았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주당노동시간은 55.9시간이다.

박 교수는 특례업종 중 운수업에 대해서는 “운수업 노동시간 문제는 노동부와 국토교통부가 함께 풀어야 할 뜨거운 감자다. 유럽의 경우 노동법이 아니라 운송사업법 등의 특별법으로 다룬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 부처가 서로 눈치 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가 특례규정 입법 시 참고한 일본의 경우 81년 특례규정에 해당하는 규정을 삭제했다. 이후 상한이 설정된 연장근로와 변형근로시간제를 활용했다. 87년에는 법 개정을 통해 주 40시간인 법정근로시간을 특례업종에 한해 주 44시간까지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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