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가치 재정립 나선 바른정당, ‘민주열사 묵념’ 등 자체 토론…“보수의 진화’ 위한 노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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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신랄하게 비판해도 되죠?”
박창기 블록체인OS 대표의 말에 회의장에 자리한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함께 자리한 20여 명의 바른정당 당직자 및 참석자들도 호기심반 기대반의 표정으로 다음 발언을 기다렸다.
13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바른정당 당사, ‘사회경제정책 분야의 낡은 보수와 새로운 보수’라는 제목으로 토론회가 열렸다. 기존 보수정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자리다. 발제자들도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를 불렀다. 이들은 혹독한 자기반성과 함께 서민을 향한 보수 정치를 주문했다.
박 대표는 “국민들은 바른정당 의원들이 지난 정권 때 한 한심한 일을 알고 있다. 재벌과 기득권을 위한 법안과 규제를 만들었다”며 “1㎾를 쓰는데 휘발유가 전기보다 비싼 건 에너지를 많이 쓰는 기업들을 위해 전기세를 낮춰서이고 이를 주도한 것이 과거 한나라당·새누리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까지 보수정당은 상위 1%를 차지하는 재벌과 정상 모리배를 대변해왔고, 민주당과 정의당은 상위 9%를 차지하는 공무원·공기업 노조, 대기업 노조, 전교조 등을 대변해왔다“며 ”그간 외면당했던 90%의 ‘진짜 서민’을 위한 새로운 보수의 길을 개척해야한다”고 요청했다.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가 5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하태경 의원에게 바른비전위원장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가 5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회의원·원외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하태경 의원에게 바른비전위원장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집권 비결로 공공부문 개혁을 꼽으며 이를 ‘벤치마킹’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한국은 교사·공무원·공기업 및 대기업 근로자 등 상층 500만명이 선진국이라면 1000만명이 먹을 ‘파이’를 먹고 있다”며 “그런데 정치인들이 여기에 진입하지 못한 계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은 저소득층을 위한 ‘가계최저소득제’ 구상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4인 가구 기준으로 최저생계소득이 350만원이라고 가정할 때, 이보다 적게 버는 가구는 국가에서 나머지 금액을 보충해준다는 개념이다. 하 의원은 “일종의 마이너스 세금으로 보면 된다”며 “(최근 거론되는) 기본소득제는 일정 연령대의 개인에게 무조건 주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고, 이것은 저소득층 가구에 주기 때문에 선별적 복지“라고 말했다.
오전엔 ‘주요 20개국(G20) 다자외교 평가와 전망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실상 남북 정상회담 제안이 담긴 ‘7·6 베를린 구상’ 등에 대한 토론이다. 이때 토론자들은 보수 성향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을 지낸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기존 민족주의, 쇄국주의 관점에서 정책을 펴고 있으며 소수에 의한 집단사고에 빠져있다”며 “비글로벌적 시각은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합쳐지므로 쉬운 정책, 쉬운 말로만 간다”고 비판했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베를린 평화 구상이라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해온 것의 실패를 다시 시도하겠다는 걸 명확히 이야기 하고 있어 매우 충격적”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김영우 의원은 이에 대해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게임 체인처를 만들고 있는데 우리는 과거 했던 논리에서 햇볕정책 시즌 2를 하려고 한다”고 동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의 스탠스는) 몸은 한·미·일인데 마음은 북·중·러고 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세연 정책위의장도 “(현 정부의) 인식과 처방이 다소 이상주의·낭만적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바른정당의 안보에선 보수적, 사회·경제적인 면에선 개혁적인 스탠스가 드러나는 하루였다. 11일에도 국민의례 묵념 대상에 민주열사를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당내 인사들이 열띤 노론을 벌이기도 했다. 바른비전위원장이기도 한 하태경 의원은 “시대적 과제에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 때 새로운 보수로의 세대교체를 이룰 수 있다”며 “대선과정에서 표방한 따뜻한 보수의 적극적 정책대안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유성운 기자 pirt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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