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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사드 때문이 아니라 틈이 생기면 일어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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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수정 라이팅에디터 외교안보선임기자

김수정 라이팅에디터 외교안보선임기자

국립대전현충원 권율정 원장은 하루 서너 번씩 전사자 묘역을 찾는다. 그중 천안함46용사 묘역 내 문영욱 중사(당시 23세)의 묘비에서 한참을 서 있곤 한다. 홀어머니를 여의고 “살아보겠다”며 해군 부사관의 길을 택한 그는 입대 1년 만인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숨졌다. 그야말로 사고무친(四顧無親)이다. “제 아들이라 생각하고 인사하죠. 여기 잠든 희생자들에 얹혀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는 거잖아요. 정치인 등 이곳을 찾는 모든 분께 한 번 더 이들을 생각해 달라고 말씀드립니다.”

서방·공산권 맞섰을 때 애치슨라인이 한국전의 한 요인 #중국의 압박에 흔들리는 건 70년 힘의 균형 틈새로 인식

15년 전 어제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서 북한의 기습 공격에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했다. 그들이 참수리호에서 스러진 날 우리는 월드컵 3, 4위전 흥분에 빠져 있었다. 1999년 6월 15일 1차 연평해전에 이은 2차 연평해전이었다. 67년 하고도 닷새 전 새벽에 북한은 38선을 넘었다.

제2 연평해전 15주기 행사에서 전사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릴 때,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방미 첫 일정으로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헌화했다. 참전 용사들 앞에서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 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들의 희생에 고마움을 표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및 북핵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진 참에 보여준 문 대통령의 ‘장진호 외교’다.

1950년 11월 27일 시작된 장진호 전투는 “금세기 지역 전쟁 중 가장 혹독한 전쟁(새뮤얼 마셜)”이라는 한국전쟁에서도 가장 치열했다.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하다 중공군 7개 사단에 포위된 미 해병1사단은 영하 40도에서 2주 동안 처절하게 싸웠다. 5000여 명이 사상했다. 장진호 전투 덕에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피란민 1만4000명을 싣고 흥남부두를 떠날 수 있었다. 이 배에 문 대통령의 선친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문 대통령의 방미 이틀 전 전쟁을 언급했다. “사드의 정치적 함의가 커져서 그것이 미·중 갈등으로 표출되고 남북한의 오해가 있다 한다면 피해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쟁은 돌발적이고 예고편도 징후도 없다. 결정권자가 전쟁이라 선언하는 순간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되자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어찌됐든 한국전쟁의 발발 요인을 현 시점에서 짚어볼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3주 내 남한 전역을 점령하겠다는 김일성의 계획에 불을 붙인 건 1950년 1월 12일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애치슨 라인’(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에서 남한 제외) 언급이었다는 건 다 아는 얘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의 긴장 속에 아시아에서의 도약 발판을 찾던 스탈린도 미군이 지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승인했다.

67년이 지난 지금, 중국이 이 지역(나아가 국제사회) 주도권 내지 패권 추구를 위해 한·미 동맹의 균열을 추구한다는 것도, 사드 압박이 그 일환이란 것도 상식이다. 한·미 군사동맹 이완은 다르게 표현하면 제2의 애치슨 라인 긋기일 수 있다.

물론 한·미 동맹이 쉽게 깨어지진 않을 거다. 문제는 북한의 핵·미사일(ICBM) 무기체계가 완성된 뒤 펼쳐질 한반도 안보 지형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다. 북한이 서울을 공격할 경우 미 본토가 북핵 공격의 사정거리에 있으면 미국은 한국 지원에 나서기 어렵다. 미국의 북핵대비 확장억지력 제공도 무의미해지고 한반도에서 발을 빼라는 미 국민의 요구도 거세질 수 있다. 그레이엄 앨리슨 미 하버드대 벨퍼센터 소장, 휴 화이트 호주 국립대 교수 등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결코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한국 정부가 중국의 사드 압력에 휘둘리는 상황을 외부에선 한·미 동맹이 지탱해 온 이 지역 힘의 균형의 균열 징후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 가정이 너무 극단적이라거나, 북한은 서울을 향해 결코 핵을 쓸 리가 없다거나, 북한은 절대 남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전제를 깔고 본다면 ‘안보’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안보는 비록 1%라도 ‘가정’에서 출발한다.

김수정 라이팅에디터 외교안보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