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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이 그리 중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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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사회2부장

이상언 사회2부장

서울 서대문경찰서와 경찰청은 150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래서 서대문경찰서에 가려다 경찰청으로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경찰청 건물에 큰 참수리 문양이 붙어 있고 의경들이 정문에 서 있으니 경찰서로 오인되기 딱 좋다. 건물 풍채가 일선 경찰서와는 확연히 다르지만 시민들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경찰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사는 게 좋다.

시민들에겐 검찰·법원보다 교육·집 문제가 절실 #윤석열 카드로 보여준 창의성 다른 곳에도 써 주길

보통 시민도 교통사고나 술자리 시비 등으로 인해 경찰서 문턱을 넘기도 한다. 하지만 검찰청까지 갈 일은 잘 겪지 않는다. 평생 검찰청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이가 부지기수다. 국민이 검찰총장이 누군지 모르고 사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법원도 많이 다녀봐야 좋을 게 없는 곳이다. 선량한 시민들은 별로 갈 일도 없다. 그래서인지 최근 불거진 법원행정처 권한 남용 논란이나 판사들의 집단적 법원 개혁 요구에 대한 뉴스는 인기가 없다. 관련 소식을 보도하는 기자는 아쉽겠지만 그것이 정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검찰청과 법원은 중요한 곳이다. ‘기득권 카르텔 보호막’이라는 의심을 사는 것만으로도 사회 정의가 훼손된다. 문재인 정부에는 노무현 정부가 뜻을 이루지 못한 미완의 개혁 과업이 남겨진 곳이기도 하다.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검찰의 힘이 지나치게 커졌고, 법원 내 행정기구에 과도하게 권한이 쏠렸다. 그렇다고 해서 검찰과 법원이 엄청난 부패 집단이 된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 문제를 오랫동안 탐구해 왔다. 법으로 정해진 범위 내에서 계획을 실행하면 된다.

법 무서워하며 사는 보통 시민에게는 검찰·법원 개혁보다 절실하게 해결책을 원하는 일이 있다. 교육과 부동산 문제 같은 것이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피하고, 결혼을 해도 아이 낳는 것을 두려워한다. 주거비·교육비 부담의 굴레에 한 번뿐인 인생을 속박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중장년층도 교육·부동산 중 하나 또는 둘 다의 고민을 안고 산다. 지대(地代) 상승은 무주택 월급생활자의 실질소득을 줄인다. 빈부격차의 박탈감을 키운다. 검찰·법원이 비정상이어서 불행하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지만 주거나 교육 문제 때문에 이미 불행해하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었다는 사람은 사방팔방에 있다.

교육 문제의 핵심은 사교육이다. 수능에 등급제 절대평가 방식을 도입하고, 특목고·자사고를 없앤다고 사교육비가 줄 것 같지는 않다. 노무현 정부 때 수능 등급제를 해봤다. 사교육비 경감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등급 구분 방식 때문에 원성만 샀다. 특목고를 폐지한다 해도 중학생 과외가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다. 인기 학군 거주 경쟁 때문에 서울 강남 아파트 값은 더욱 오를 가능성이 크다. 대입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계획은 이미 ‘음서제의 확장이냐’는 반발을 사고 있다.

교육 문제의 진짜 핵심은 공부의 내용이다. EBS 교재 외우고, 학교와 학원에서 문제 풀이 연습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교육이라고 많은 사람이 숱하게 외쳐오지 않았던가. 더욱 큰 문제는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책에 본질이 빠져 있다.

수십 년간 셀 수 없이 많은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노태우 정부 때의 200만 호 건설을 빼면 약발이 먹혔던 적이 거의 없다. 이번 정부도 투기꾼 막는다며 ‘6·19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글쎄요’다. 가격을 낮추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공급 확대라고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와 있다. 국·공유지에 임대주택이든 분양주택이든 지어 공급을 늘리는 것을 포함해 근본적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 개혁을 위해 고검장급 자리인 서울중앙지검장에 검사장도 아니었던 윤석열 검사를 앉혔다. 그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서울중앙지검장의 직급을 한 단계 낮추는 창의적 방법을 찾아냈다. 이는 정권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는 효과도 냈다. 이런 발상 전환 능력과 결연한 의지를 다른 분야에도 발휘한다면 ‘헬조선 자학’의 터널에서 하루 빨리 탈출할 수 있을 것 같다. 검찰·법원 개혁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며 의미 있는 일이 많다. 그리고 권력의 유통기한은 그리 길지 않다.

이상언 사회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