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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대참사’의 진짜 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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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제 경선 캠프의 좌장이 돼 주십시오.”

안철수와 당, 대선 내내 오월동주 #녹취록 파동, 누적된 불통의 폭발

지난 3월 국민의당 대선 후보 경선의 막이 오르기 직전, 안철수는 박주선·이상돈과 따로 만나 이렇게 청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 거절했다. 박주선은 자신도 경선에 나설 생각이었고, 이상돈은 “손학규와의 친분 때문에 돕기 어렵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안철수의 경선 캠프에 현역 의원은 가물에 콩 나듯 찾아보기 어려웠고, 안철수와 가깝다는 벤처기업인 등 외부 인사들로 메워졌기 때문이다. “허울뿐인 좌장 감투를 쓰고 ‘친안’ 인사들 들러리나 하긴 싫다”는 생각에 거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안철수와 국민의당 의원들은 이렇게 대선 기간 내내 따로 놀았다. 안철수는 경선에서 이긴 뒤 대선 캠프도 경선 때 쓴 외부 인사들을 그대로 갖다 썼다. 당의 공식 선거대책본부에 중진 의원들이 너도나도 끼어들어 자리를 요구하는 모습에 정나미가 떨어져 사조직 위주로 대선을 치렀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안철수는 유세부터 의원들 대신 20~30대 외부 젊은이들을 데리고 전국을 도는 ‘뚜벅이 유세’를 택했다. 선거 전략도 의원들 대신 수억원을 주고 계약한 컨설턴트에 의존했다. 의원들도 안철수 돕기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전국을 돌며 ‘안철수 없는 안철수 유세’에 나섰지만 본질은 자신들 얼굴 알리기였다. 안철수의 당선보다는 대선 뒤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문준용 동문 인터뷰 조작’ 사태는 이렇게 곪을 대로 곪은 당의 분열상이 폭발한 결과였다. 국민의당은 평소 튀는 행동으로 평판이 좋지 않았던 당원이 들고 온 녹취파일을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특혜 채용의 결정적 증거’라며 공개했다. 당과 떨어져 전국을 돌던 안철수는 뒤늦게 상황을 전해듣고 “나는 그런 것(네거티브 폭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미 이용주 국민의당 공명선거추진단장이 녹취록을 공개한 뒤였다고 한다. 안철수와 의원들이 불통이다 보니 당의 기강이 해이해져 이런 참사가 터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안철수는 ‘새 정치’를 통해 이념·지역에 매몰된 우리 정치에 희망을 제시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단일화 압박을 이겨내고 의석수 40석의 원내 3당을 일궈낸 것도 큰 공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세운 당과의 소통에 실패했다. 창업주와 멀어진 당은 출처가 불분명한 녹취록의 진위 여부조차 가리지 못하는 콩가루 조직으로 전락했다. 이런 당에 나라를 맡겼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만 해도 두렵다.

안철수는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대로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자신의 당이 조작된 녹취록으로 유권자를 우롱한 데 대한 도의적·정치적 사과는 기본이다. 의원들과의 불통으로 조직의 기강이 땅에 떨어진 당을 갖고 수권하겠다고 나선 데 대해서도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야 살 길이 열린다.

2012년 대선에서 비문 의원들과 불통한 문재인은 패배했고, 2017년 대선에서 비문들을 껴안은 문재인은 승리했다. 안철수의 대선 행보를 보면 5년 전 문재인 뺨치는 불통이었으니 패배한 것도 당연하다. 안철수는 “국민의당 의원들이 내가 생각하는 ‘새 정치’와 너무 동떨어져 있더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과 행태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소통해 끌고 가는 게 정치다. 그게 싫으면 정치인 자격이 없다.

바른정당 신임 대표 이혜훈에게 배움을 얻기 바란다. 그는 대표에 당선되자마자 ‘반이혜훈’의 선봉이었던 김무성을 찾아갔다. 비서가 “손님 만나고 계신다”고 가로막자 “기다리겠다”고 한 끝에 김무성과 대면해 “도와 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김무성이 답을 피하자 “당의 어른 아니시냐. 매일 출근해 말씀을 듣겠다”며 매달렸다. 김무성도 “허허” 하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참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서라면 자존심을 버릴 줄 안다. 그런 인물이 되려면 먼저 같은 당의 라이벌들부터 껴안는 용기가 필수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