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카투사 '군기 잡기' 나서…휴일 대폭 축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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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카투사의 휴무일을 대폭 축소하고 군기 잡기에 나섰다. 카투사는 미군과 함께 근무하는 한국군 병사인데 그동안은 한국과 미국의 공휴일에 모두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국의 휴일에만 쉬게 된다. 새로운 근무 수칙은 지난 6일 현충일부터 적용됐다. 미군에게 한국의 현충일은 휴일이 아니다. 지난해와 같았다면 일반 한국군 병사처럼 쉬었을 것이다.

군 당국, 이번달부터 카투사에 미군 휴일만 적용 #그동안 한미 양국 휴일에 쉬던 혜택 사라져 #"카투사 사고 많다" 가정통신문 보내기도 #과잉보호가 군을 약하게 만든다는 지적 나와

그동안 휴무일이 중복 적용된 이유는 카투사의 소속이 한국군 일반병사와 달라서였다. 카투사(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는 한국 육군 인사사령부 소속이지만 주한미군에 배속된 신분이다. 이런 이유로 카투사 병사는 군대생활을 미군과 함께 보낸다. 카투사 병사가 한국과 미국의 공휴일을 모두 누려온 것은 이런 특별한 환경 덕분이었다.

용산 미군 기지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미군과 카투사 병사 [사진 주한미군]

용산 미군 기지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미군과 카투사 병사 [사진 주한미군]

실제 카투사 병사는 미군처럼 침대가 갖춰진 2인실 병영숙소도 배정받는다. 일반 한국군 병사가 분대원(8명) 단위로 생활관을 배정받는 것과 비교된다. 게다가 카투사는 미군 병사처럼 주말에 외박도 가능해 개인생활의 자유가 일반 한국군 병사보다 훨씬 보장된다. 업무용 휴대폰도 지급받아 언제라도 가족과 연락할 수도 있다.

이처럼 카투사는 일반 한국군의 군대생활보다 편하다는 인식 때문에 경쟁률이 치열하다. 지난해 평균 입대 경쟁률은 8.3:1이었다. 영어 어학능력(토익기준 780점 이상)을 보유한 현역 복무 대상자는 누구나 딱 한 번 지원할 수 있다. 육군은 카투사를 지원한 대상자들 가운데 컴퓨터로 무작위로 선발한다. 그래서 토익점수가 좋아도 카투사에 선발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휴무일을 축소했지만 그래도 함께 근무하는 미군 병사보다는 여전히 4일이나 더 많다. 카투사는 신정(1월 1일)ㆍ설날ㆍ추석ㆍ석가탄신일에도 쉴 수 있어서다. 민족의 명절과 종교적인 특수성을 배려해준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미군에게도 공휴일이라 당연히 쉰다. 따라서 특별히 허가된 4일을 제외한 한국의 공휴일(삼일절ㆍ어린이날ㆍ현충일ㆍ광복절ㆍ개천절ㆍ한글날)에는 미군처럼 근무해야 한다.

군 관계자는 “미군과 함께 근무하기 때문에 업무의 연속성과 효율성을 고려해 이번 휴무일을 조정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군 카투사 병사들만 이중으로 더 많이 쉬어서 미군의 불만도 있었다”며 “한·미군 사이의 형평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고 귀띔했다.

군 당국의 카투사 군 기강 강화 조치는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1월 병사들 부모들에게 가정 통신문이 전달됐는데 “훌륭한 아들을 군에 보내주신 부모님들께”라며 부드러운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실제 내용은 당부의 말씀으로 가득했다.군에서 발송한 서신은 성폭력ㆍ성추행ㆍ민간인 폭행사고 등을 거론하며 철저한 자기관리와 부모님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카투사는 비교적 독립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부모들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군 당국은 서신 발송에 대해 “카투사는 외출ㆍ외박 등으로 카투사 병사들이 외부 환경에 노출됐을 때 각종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해명했다. 한국군지원단장인 이철원 대령은 “지휘관으로서 병사들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부모들께 당부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지뢰제거 작전을 수행중인 병사들 [사진 중앙포토]

지뢰제거 작전을 수행중인 병사들 [사진 중앙포토]

가정통신문과 관련한 부작용도 있었다. 최근 수도권의 한국군 공병부대에서는 지뢰 제거작전에 병사들을 투입하면서 “부모의 동의서를 받아 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본지 3월 29일자 10면) 당시 논란이 일자 군 당국은 “군에 적합하지 않고 형평성 문제도 있어 즉각 시정조치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가정통신문은)군인을 보이스카웃으로 취급한 것 아니냐”며 “병사들의 자존감과 자립감을 떨어뜨려 오히려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군 당국이 스스로 위탁 보모라고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며 지적했다. 이런 과잉보호가 오히려 군을 약하게 만든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용한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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