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실손보험료 낮추려면 의료계 과잉진료도 손 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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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심새롬경제부 기자

심새롬경제부 기자

“국민 지출 3대 부담이 교육비·의료비·통신비다. 이 중 의료비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고민했다.” (김성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자문단장)

국정위 “보험사 수익 1조대” 발표에 #업계는 “통계 틀려, 내릴 여지 없다” #병원·의사들은 의료비 공개 꺼려 #자칫 상품 판매 중단 불똥 튈 우려

목적과 방향이 명쾌하다. 새 정부가 두 번째 금융정책으로 발표한 민간 실손의료보험료 인하안은 방점이 가계 경제 안정에 찍혀있다. 고령화로 나날이 치솟는 병원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게 목표다. 국정위는 올해 안에 관련법을 만들고 정책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초부터 실제 인하가 시작된다. 그런데, 정말 실손보험료가 내려갈 수 있을까.

아직 숫자가 명쾌하지 않다. 정책협의체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보험료를 ‘얼마나 깎을 수 있을지’를 정확히 계산해내는 거다. 이미 나온 통계를 잘 굴리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보험사와 의료계가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다.

보험사들은 국책연구기관 통계를 부정하고 나섰다. 국정위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건강보험 급여 항목을 늘린 뒤 보험사들이 얻은 반사이익은 4년간 1조5244억원이라고 발표했다. 그간 돈을 벌어갔으니 보험료 내릴 여건이 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보험연구원에서는 “반사이익 규모가 실제 보험 통계가 아닌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산출돼 근거가 많이 부족하다”는 반론을 내놨다. 보험업계는 이미 한참 손해를 보고 있다는 실손보험 손해율 수치(지난해 평균 120.7%)를 들고나와 “더 내릴 여지가 없다”는 주장을 편다. 그마저도 회사별로 통일된 기준 없이 모은 자료다. 앞으로 구성될 정책협의체가 위험손해율, 영업손해율 등 보험사마다 제각각인 손해율 산정 방식을 이제서야 표준화하기로 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부정적이다. 어떤 진료항목에서 얼만큼 의료비가 들어왔는지 공개하는 걸 꺼린다. 명분은 ‘의료정보 보호’다. 환자가 낸 돈이 곧 의사가 받은 돈이니 병의원 세부 수입내역은 늘 미지의 영역이다. 국정위는 21일 브리핑에서 “실손보험에 가입한 국민들이 미가입 환자보다 과잉진료를 받고 있다”면서 “실손보험 가입자와 미가입자 간 급격한 차이가 나는 진료항목부터 조사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실손보험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해 지금까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던, 유용하고 적확한 대책이다.

하지만 정책협의체에 누가 참여해 어떤 경로로 병원 진료 내역을 공개할지 구체적 계획이 없다. 한 금융당국 핵심관계자는 “보건복지부가 뜨뜻미지근해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분위기를 전했다. 의료계 참여가 필수인데 정작 복지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는 얘기다.

의사들은 쉽게 협조하지 않을 태세다. 지난 25일 서울시내 대학병원 대강당에서 열린 ‘실손의료보험 대응방안’ 세미나에서는 “보험사들이 진료시간에 와서 방해를 하면 업무방해죄로 파출소에 신고하라”, “실손보험의 심사 위탁과 청구 간소화는 막아야 한다”는 의사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시장에서는 당국이 보험사 팔만 비틀다간 실손보험 판매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보험사 손해율이 높은 것도, 소비자들이 내는 보험료가 오르고 있는 것도 모두 사실”이라고 진단한다. 환자와 보험사가 모두 손해를 봤다면 그 이익은 어디로 흘러들어간 걸까. 물론 모든 개원의를 과잉진료 행위자로 몰아가는 건 옳지 않다. 다만 금융당국과 금융사(보험사)만 있고, 정작 병원이 빠진 실손의료비 대책은 정답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심새롬 경제부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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