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법부의 정치화 우려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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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사법부의 내홍(內訌)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전국 법원의 판사 100명으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어제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추가 조사키로 한 지난 19일의 결의 내용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했다. 판사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과 수뇌부를 믿지 못해 직접 규명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판사 사회 내부에서 대표성 논란과 함께 사법부까지 정치 바람을 타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사태는 올 3월 법원 내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판사들을 상대로 ‘사법 독립과 법관 인사제도에 관한 설문조사’와 학술대회를 추진하면서 촉발됐다. 이 움직임이 알려지자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행사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나아가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판사들의 명단을 관리하고 있다는 블랙리스트의 존재 여부로 번졌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블랙리스트에 대해선 ‘사실 무근’으로, 사법행정권에 대해선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반발하는 일부 판사들이 불만을 제기하면서 양승태 체제를 둘러싼 갈등과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비대한 권한을 행사하는데도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예산권과 인사권을 틀어쥐고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특정 세력이 힘을 과시하듯 집단행동을 하는 모양새는 순수성과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

사법부는 대대적인 ‘사법 권력’의 교체기에 들어간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 9월 퇴임하는 양 대법원장을 비롯해 대법관 13명 가운데 12명을 임명한다. 사법개혁을 주장하는 판사 출신이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된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일수록 양심과 소신으로 법의 안정성과 독립을 지켜내는 것이 판사의 숙명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사법부가 정치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3권 분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민주주의의 기초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