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텀블러 폭탄’ 참고서는 4월 러시아 지하철 테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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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텀블러 폭탄’으로 교수를 다치게 한 혐의(폭발물사용죄)로 지난 13일 경찰에 체포된 연세대 대학원생 김모(25)씨가 지난 4월 발생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테러에 착안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체포된 대학원생 “한 달간 실험” #“논문 작성 때 교수가 질책” 진술도

경찰은 “논문 작성 과정에서 교수로부터 질책을 받았다”는 김씨의 진술도 확보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현수 서울 서대문경찰서 형사과장은 “김씨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폭탄테러를 보고 폭발물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선 당시 테러로 15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다쳤다. 김씨는 지난달 2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라는 글과 함께 현지에서 외국인들과 어울려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 피의자 김모(25)씨가 살던 하숙집. 김나한 기자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 피의자 김모(25)씨가 살던 하숙집. 김나한 기자

경찰에 따르면 폭발물을 만들기로 결심한 김씨는 약 한 달간 자신의 하숙방에서 ‘실험’에 매진했다. 건전지를 구입해 점화장치를 만들어 보는 등 공학도로서 가진 지식을 동원했다. 그렇게 지난 10일 ‘텀블러 폭탄’이 완성됐다. 3일 동안 망설이던 김씨는 13일 오전 2시37분에 하숙집을 나섰다. 오전 3시쯤 학교에 모습을 드러낸 김씨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연구실에 있는 3차원(3D) 프린터를 작동시켰다. 이후 오전 7시40분쯤 이 건물 4층에 있는 김모(47) 교수 방 앞에 폭발물이 든 쇼핑백을 내려놓고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하숙집 주인 A씨는 “김씨가 13일 오전 8시가 조금 넘었을 때 하숙집에서 아침밥을 먹었다”고 기억했다.

“연세대 공학관에서 택배상자가 폭발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것은 오전 8시41분이었다. 강력한 폭발은 없었고 화약이 연소되며 불길이 치솟아 김 교수가 팔과 얼굴 등에 전치 2주의 화상을 입었다.

김모(25)씨가 '텀블러 폭탄'을 만들 때 사용한 장갑을 버린 곳. 김나한 기자

김모(25)씨가 '텀블러 폭탄'을 만들 때 사용한 장갑을 버린 곳. 김나한 기자

경찰은 건물 폐쇄회로TV(CCTV) 영상으로 김씨의 동선을 파악했다. 김씨의 움직임은 캠퍼스 밖 하숙집 근처까지 이어졌고 김씨가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싸서 본인이 사는 하숙집 앞에 버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비닐봉지 안에는 화약이 묻은 장갑이 있었다. 경찰은 이 증거물을 이용해 김씨의 자백을 받아 냈다.

김씨와 같은 연구실에서 공부해 온 외국인 동료 B는 그에 대해 좋은 평가를 했다. B는 “평범한 학생이었고 김 교수와도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대해서는 “영어도 잘하고 친절한 분이다. 내게 무슨 고민이 있는지 늘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지난해 교내 온라인 소식지에 실린 김 교수와 연구실 학생들의 단체사진에서 김씨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동료들과 어울려 앉아 있었다. 김씨는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5편의 논문에 김 교수와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현·김나한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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