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사, 영·호남 소통 열쇠 될까 … “정치논리 개입은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한국 고대사에서 지금껏 변방으로 치부돼 왔던 가야사가 최근 화두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다.

가야사 권위자 주보돈 경북대 교수 #영·호남 17개 지자체가 가야문화권 #연합국 형태로 현 지방자치와 유사 #시·군별 관광콘텐트 개발도 가능 #‘역사벨트’로 묶여 소통 실마리 기대 #정치권 주도 연구, 역사 왜곡도 우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 고대사가 삼국사 중심으로 되다보니 삼국사 이전의 역사, 고대사 연구가 잘 안 돼 있다. 가야사는 신라사에 가려서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야사 복원은 아마 영·호남이 공동사업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어서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으로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야사 연구가 영·호남 소통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자칫 정치권이 연구를 주도해 역사 자체가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동시에 하고 있다. 가야사 연구의 권위자인 주보돈(64·사진) 경북대 사학과 교수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 교수는 “문 대통령이 남북문제만큼이나 심각한 ‘동서문제’를 가야사 연구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너무 앞서가서 연구를 주도하면 자칫 모든 것을 그르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주 교수와의 일문일답.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가야사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어떻게 보나.
“이른바 ‘가야문화권’에 속한 17개 시·군이 정부에 연구사업 지원을 요구했을 거다. 이 지자체들은 경남과 경북은 물론 호남지역에도 퍼져 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은 영·호남 소통의 실마리가 없었을 거다.”
가야사는 과거 정부에서도 주목했던 역사라고 들었다.
“가야사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뿌리가 깊다. 거슬러 올라가면 DJ(김대중) 정부부터 가야사 연구에 관심이 있었다. 당시 공교롭게도 실력자 3명, 즉 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중권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모두 김해 김씨였다. 가야사 연구 지원도 경남 김해 쪽에 집중됐다. 300억원 이상 투자됐다.”
김해뿐만 아니라 영·호남의 지자체들이 넓게 가야문화권으로 묶여 있는데.
“가야문화권에 연관이 있는 주변 지자체들이 크게 반발했다. 자기 지역도 가야문화권인데 김해만 막대한 지원을 받으니까 반발할 수밖에. 여러 지자체들이 저마다 가야사 연구에 나섰는데 결과적으로 이 과정에서 가야문화권이 경남과 경북뿐만 아니라 전남 광양·구례·순천·여수 쪽에까지 퍼져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른바 역사의 변방에 있던 지자체들이 가야문화를 통해 일종의 ‘역사벨트’로 묶이게 된 셈이다.”
지자체들이 가야사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
“고구려·백제·신라와 달리 가야는 여러 독립국이 연합을 맺고 있는 형태였다. 지금의 지방자치제와 유사하다. 가야의 독립국들은 각각이 모두 변방이 아닌 중심이었다. 이를 토대로 각 지자체들은 자기 지역이 역사와 전통이 깊은 곳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고 정체성도 찾을 수 있다.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지자체 주도로 가야사 연구가 추진되면서 생긴 부작용은.
“지자체의 재정지원을 받은 연구자들이 그 지역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을 과대포장하게 된다. 지역에 중심을 맞춰 역사를 해석하게 된다는 말이다. 지자체 입맛에 맞는 역사 연구의 부작용이 가야사 연구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역사 연구가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느껴지면 지원을 중단하는 것도 문제다.”
앞으로의 과제는.
“학술의 영역은 학술에 맡겨야 한다는 점을 정부가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역사 연구는 처음에 추진력을 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계에 봉착한다. 역사가 과장되고 왜곡되기도 한다.”
대가야왕릉전시관 전경. 국내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인 지산동 44호분 내부를 재현했다. [사진 고령군]

대가야왕릉전시관 전경. 국내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인 지산동 44호분 내부를 재현했다. [사진 고령군]

◆주목 받는 ‘대가야의 도읍’ 고령군=가야사를 관광산업에 끌어들이려고 가장 노력한 지자체 중 한 곳이 경북 고령군이다. 고령군은 가야연맹체 중 한 국가였던 대가야가 있던 곳이어서다. 고령군엔 가야와 관련한 관광명소와 유적들이 즐비하다.

우선 가야 최대의 고분군인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사적 제79호)이 있다. 국내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인 44, 45호분을 비롯해 700여기의 고분이 분포해 있다. 대가야 양식의 토기와 철기, 금관, 장신구 등이 출토됐다. 44호분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대가야왕릉전시관도 볼거리다.

대가야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대가야박물관, 가야금 창시자인 우륵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우륵박물관, 숲길과 캠핑 시설이 갖춰진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등도 있다.

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