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입에 트럼프 운명 달렸다…코미는 무슨 말을 준비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임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8일(현지시간) 상원 청문회 출석을 앞두고, 청문회 모두발언을 먼저 공개했다. 이 ‘미리보기’만으로도 엄청나다는 게 미 언론들의 중론이다.

뉴욕타임스(NYT)가 입수해 보도한 이 발언록 원본에서 주요 부분을 발췌했다.

악연의 시작

트럼프를 처음 만난 날부터, 그와 1대1로 대화한 직후에는 서면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6일 뉴욕 트럼프 타워 회의실. 제임스 코미 전 국장은 이곳에서 당선자 신분의 트럼프를 처음 만나게 된다. 악연의 시작이다.
그는 트럼프를 처음 만난 그날 “회의에서 나가자마자 트럼프 타워 밖에 세워둔 FBI 차량에 앉아 노트북에 타이핑하기 시작했다”며 자신이 얼마나 꼼꼼히 기록을 해두었는지 밝혔다. 코미는 발언록을 통해 “트럼프와 4개월 동안 나눈 9번의 대화를 모두 기억해낼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또 “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는 두 번 대화를 나눴지만, 전화 통화를 한 적은 없다. 하지만 트럼프와는 4개월 동안 3번 직접 만났고, 6번 전화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매우 이례적인 행동을 했음을 돌려 말한 것이다.

제임스 코미 [AP=연합뉴스]

제임스 코미 [AP=연합뉴스]

은근한 협박

트럼프는 내게 ‘FBI 국장으로 계속 일하길 원하는지’ 물었고, 나는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이미 두번이나 내가 남아주길 바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1월 27일 백악관 그린 룸. 트럼프의 초청에 코미는 홀로 백악관을 찾아 그와 식사를 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코미에게 “FBI 국장으로 계속 일하길 원하느냐”고 묻고, 코미는 그 질문이 매우 불편했음을 발언록에 적었다. 한마디로 ‘임기를 끝까지 채우길 원한다면 내게 밉보이지 말라’는 은근한 협박이 불쾌했단 얘기다.

그는 트럼프에게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10년 임기를 모두 채우고 싶다. 나는 정치적으로 어느 편에도 서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코미는 이날의 기록에 “FBI 국장은 전통적으로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혹여 그렇지 않게 될까) 크게 걱정됐다”고 적었다.

대통령은 ‘나는 충성심이 필요하다. 충성심을 기대한다’고 말했고, 우리는 단지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봤다.

같은 날, 대통령은 코미에게 이렇게 말한다. 코미는 이 순간을 두고 “나는 움직이지도 않았고, 말하지도 않았으며 내 얼굴 표정을 바꾸지도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어색한 침묵 속에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단지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봤다”고 고백했다.

관련기사

대놓고 압박

대통령은 마이클 플린이 러시아와 통화하며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당신이 이 일(러시아 커넥션 수사)을 포기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2월 14일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 오벌 오피스. 트럼프는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비롯한 측근들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줄 것을 요청한 후, 코미 전 국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커넥션’의 핵심 수사 대상이 돼 국가안보보좌관 자리에서 물러난 플린에 대한 수사를 멈추란 얘기였다. 코미는 “이 일을 포기하겠다고 대답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은 자신이 러시아 매춘부들과 관계가 없다며 러시아 수사의 ‘구름’을 걷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3월 30일 전화 통화. 트럼프는 이날 통화에서 코미에게 자신이 “러시아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거듭해서 말한다. 또 2013년 모스크바의 한 고급 호텔방에서 러시아 매춘부들과 함께 있었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그는 러시아 커넥션 수사를 ‘구름’에 묘사하며 이 구름을 걷어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묻는다. 코미는 “대통령은 러시아 커넥션이란 구름이 자신이 미국을 위해 협상하는 일을 방해하고 있다고 했다”고 적었다.

트럼프는 ‘내가 당신에게 매우 매우 의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한 일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4월 11일 아침. 트럼프는 코미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한다. 코미는 ‘그러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이것이 트럼프와 코미의 마지막 대화였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