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세금으로 헛돈 쓰고 생색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지난달 국내 외식·호텔 업계에선 포시즌스호텔의 최고급 투어 프로그램이 단연 화제였다. 1인당 1억5500만원씩 낸 북미와 유럽·중동의 부자 관광객 32명이 포시즌스호텔 전세기로 3주 동안 전 세계를 도는 이른바 ‘컬리너리 디스커버리(미식 탐험)’ 투어다. 포시즌스호텔은 2014년부터 초특급 부자 고객을 상대로 이런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는데 서울이 투어 코스에 포함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 안팎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포시즌스호텔 서울이 이들의 서울 체류(5월 27~29일)에 맞춰 홍보에 열을 올린 건 그렇다치고 뜬금없이 한국관광공사에서도 ‘포시즌스의 세계일주 여행상품 한국유치 계기 방한시장 질적 전환 추구’라는 보도자료가 날아왔다. 제목만 보면 꼭 관광공사 노력으로 럭셔리 관광객을 서울에 끌어들인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니 관광공사는 다 된 밥에 숟가락 하나 얹은 거였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관람객 비공개 시간인 평일 저녁 창덕궁 비원을 열어주고 연회와 다과를 베푸는 데 관광공사 예산 1200만원을 썼다. 엄밀히 말하면 서울뿐 아니라 9개 도시 투어를 위해 1억원이 넘는 돈을 기꺼이 지불한 관광객 32명에게 아무 조건 없이 공짜 대접을 하느라 들어간 국민 세금이었다. 관광공사 측은 “주한 외교관이나 해외 언론 초청 행사에도 비슷한 예산 지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문제될 게 없다는 투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외교관이나 미디어 초청행사는 관계 개선이나 홍보 등 명확한 목적이 있다. 그런데 이미 돈을 다 지불한 외국 부자에게 굳이 공짜로 대접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이 고객들은 비원에서의 다과 역시 본인들이 낸 투어비용으로 진행됐다고 알고 있고, 게다가 이날 창덕궁 이벤트는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됐는데 말이다. 세금 써 가며 관광객 유치를 위한 해외 홍보를 한 게 아니라 관광공사의 생색내기용 자기 홍보라는 뒷말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다. 게다가 미식 투어라면서도 이들이 찾은 서울의 주요 레스토랑은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포시즌스호텔 서울이 경쟁관계인 다른 레스토랑 홍보를 막았기 때문이다.

관광공사의 어처구니없는 공짜 대접을 보면서 이런 식으로 낭비되는 세금이 많은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출입국관리소와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이번에 입출국 수속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했고 문화재청은 엄격하게 제한해 온 궁 뒤뜰을 열어줬다. 이런 노력만으로도 얼마든지 고부가 관광상품을 만들고 홍보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