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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와 찌질한 한국의 보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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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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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선후보(이하 경칭 생략)를 보며 미국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1909~98년)를 떠올린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우선 막말의 대가다. 홍준표의 돼지발정제나 “정권 잡으면 저 방송국부터 없애겠다”는 발언은 점잖은 편이다. 골드워터는 “북베트남에 핵폭탄 떨어뜨리자” “사회보장제도는 저소득층의 도덕적 방종만 야기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대선 참패도 닮은꼴이다. 홍준표는 역대 최다인 557만 표 차이로 떨어졌다. 골드워터도 1964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존슨에게 선거인단 486대 52로 무릎을 꿇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레스턴은 “골드워터는 대선 패배를 넘어 공화당 자체를 완전히 망가뜨렸다”고 빈정댔다. 역대급 참패였다.

홍준표·친박의 낯 뜨거운 설전 #‘바퀴벌레’ ‘낮술 드셨나’ … #미 골드워터 ‘영광스러운 참패’ #역대급 참패 딛고 보수 혁명으로 #레이건·부시 등 새 인물들 탄생

두 사람의 대선 환경도 최악이었다. 홍준표는 박근혜 탄핵의 폐허에서 출마했다. 처참한 5% 지지율에서 그나마 개인기 덕분에 24%나 득표했다. 골드워터도 민주당 케네디 대통령 암살(63년 11월 22일)의 역풍을 고스란히 맞았다. 여기에다 민주당의 존슨은 ‘Mr. 핵무기’ 골드워터를 향해 결정적 핵펀치를 날렸다. 바로 네거티브 정치광고의 레전드로 꼽히는 ‘데이지걸’이다. 두 살짜리 여자애가 데이지 꽃잎을 하나씩 떼내며 카운트 다운을 하다 핵무기가 폭발하는 대선 TV광고였다. 순진한 아이 뒤로 솟아오르는 원자탄의 끔찍한 버섯구름…. 골드워터는 곧장 침몰하고 만다.

하지만 공통점은 딱 여기까지다. 그다음부터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간다. 홍준표는 대선 후 미국으로 건너가 페이스북에다 이렇게 올렸다. 대선을 도와준 한 인사의 발언을 인용해 “목에 깁스하고 (한국당의) 대변인실이라는 데가 칼퇴근에 휴일은 아예 출근도 하지 않고… 느려터진 배부른 돼지들만 모인 곳”이라 힐난했다. 참패 책임을 당으로 돌린 것이다. 홍준표의 분노는 한국당의 대선 광고에서 폭발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44회 방송광고를 한 반면, 한국당은 내가 15% 이하 득표로 선거보전금이 나오지 않을까 봐 11회만 했다” “사실상 대선 홍보를 포기했고, 대선 후 당권 향배에만 신경을 썼다”….

반면에 골드워터는 홍준표와 정반대로 갔다. 당시 대선 캠프의 재정을 맡았던 윌리엄 미덴돌프는 이렇게 회고했다. “골드워터는 패배가 뚜렷해지자 직접 정치광고를 중단시켰다. 캠프가 집단 반발했다. 하지만 그는 ‘차라리 그 자원을 아껴뒀다가 보수 정치의 재건에 요긴하게 쓰자’고 충고했다.” 실제로 64년 대선 참패는 미국 보수 정치를 확 바꿨다. 미 공화당은 링컨 이래 노예 해방의 근거지였던 동북부 지역이 텃밭이었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루스벨트의 민주당에게 연거푸 패배했다. 골드워터는 민주당을 흉내 내는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공화당의 텃밭을 텍사스 등 남부 지역으로 옮겼다. 또 작은 정부, 감세, 복지정책 축소 등 보수 정치 노선을 선명하게 내걸었다.

64년의 참패 이후 미국에는 완전히 새로운 공화당, 보수 혁명이 시작됐다. 우선 보수가 젊어졌다. 65년 뉴욕의 20대 지식인들이 계간 잡지를 창간해 성장과 가족을 옹호하기 시작했고, 대학생들도 자발적으로 ‘자유를 위한 젊은 미국인들’을 조직했다. 여기에 30대 젊은 지식인들이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을 세워 개인의 자유, 작은 정부, 감세, 자유로운 기업 활동 등 새로운 의제들을 장악해 들어갔다. 무엇보다 새로운 보수 정치가들의 탄생이 눈길을 끌었다. B급 배우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64년 골드워터 후보 전당대회에서 뛰어난 찬조 연설로 전국구 스타가 됐다. 2년 뒤 그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조지 H W 부시는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미래의 공화당 대통령들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골드워터 측근인 미덴돌프는 40년이 흐른 뒤 『영광의 참패』를 출간하면서 당시의 패배를 ‘영광스러운 재앙(Glorious Disaster)’이라 복기했다. 실제로 그 후 13차례의 미 대선에서 공화당이 8차례나 승리했기 때문이다. 94년, 공화당이 60년 만에 하원 다수당까지 차지한 것도 보수혁명 덕분이었다.

골드워터는 87년까지 상원의원으로 활약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막말 대신 품격 있는 토론을 선보여 보수 정치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가 집필한 두 권의 책은 깊이 있는 철학과 탄탄한 논리로 1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에 비해 한국 보수 정치권의 수준은 한참 아래다. 대선 참패 이후 홍준표와 친박은 ‘바퀴벌레’ ‘낮술 드셨나’라는 낯 뜨거운 설전을 주고받았다. 바른정당의 김무성은 공항에서 ‘노 룩 패스’의 자살골까지 넣었다. 대선 참패를 딛고 젊은 보수에 희망과 미래를 불어넣은 골드워터와 비교하기조차 민망하다. 이 땅의 보수정치는 산업화 성공에만 기댔다. 또 계파별 권력 다툼만 있었을 뿐 제대로 된 가치관이나 노선투쟁이 없었다. 요즘따라 한국 보수 정치권이 참 찌질하고 초라해 보인다.

이철호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