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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이모, 저도 데려가면 안돼요?”...8살 정수(가명)에게 부모의 빈 자리 채워준 강동서 경찰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월 정수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한 외증조할머니 김씨와 정수. [사진 강동경찰서]

지난 3월 정수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한 외증조할머니 김씨와 정수. [사진 강동경찰서]

“경찰 이모, 저도 데려가면 안돼요?”
강동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박노라(38)경사는 정수(가명ㆍ8)의 집을 나설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정수가 매번 문 바깥까지 따라나서며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조르기 때문이다.
정수가 외증조할머니인 김모(69)씨와 둘이 사는 곳은 10평 남짓한 강동구 암사동 반지하주택이다. 벽지 곳곳이 침수로 인해 누렇게 번져있다. 옷을 걸 수 있는 행거 하나와 서랍장 두 개, 그리고 작은 텔레비전이 가구의 전부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문 턱 한 번 넘어보지 못한 정수에게 유일한 친구는 텔레비전이었다. 그마저도 지겨운 정수는 박 경사가 집에 들를 때마다 현관문까지 따라 나온다.

정수의 엄마 강모(25)씨는 18살 때 남자 친구와 정수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 두 사람은 헤어졌다. 정수를 안고 나온 앳된 강씨가 기댈 곳은 자신의 할머니 뿐이었다.
공사장에서 일용직을 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강씨의 아버지(정수의 외할아버지)는 제 몸 하나 겨우 뉘일 수 있는 고시원에서 살고 있었다. 강씨의 어머니와는 연락이 두절된지 오래였다. 정수 엄마인 강씨도 지난 3월 “일거리를 찾아보겠다”며 친할머니 집을 나선 뒤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정수가 외증조할머니와 살게 된 배경이다.

박노라 경사가 정수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15년 7월이다. “술에 취한 아들이 자신과 정수를 때린다”는 외증조할머니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는 엄마 강씨와 정수만 있었다. 산후 몸조리를 제때 하지 못해 하루종일 집에 누워있어야 하는 엄마 옆에서 정수는 티비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
정수네는 외증조할머니가 노인연금과 기초생활수급을 합해 받는 80여 만원 중, 월세 25만원을 제외한 55만원으로 한달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 라면ㆍ햄ㆍ과자 등 인스턴트 식품으로만 매일 끼니를 때우던 정수는 지방과다 섭취로 또래의 아이들보다 뚱뚱한 체격이다.

“아이가 6살이 되도록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닌 적이 없어서 무엇을 물어도 잘 알아듣지 못하더라고요. 순간 정수보다 한 살 어린 제 아들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습니다(박노라 경사)”

박노라 경사는 부모의 빈 자리를 채워주기로 결심했다. 박 경사는 지난 3년 여간 퇴근 길마다 수시로 양 손에 케이크과 장난감 등을 사들고 암사동 정수네 집에 들렀다. 박 경사는 인근 복지관과 강동구청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덕분에 정수는 매달 생필품 및 학습지 교육을 지원받고 있다. 박 경사는 지난 3월 초등학생이 된 정수를 위해 할머니를 모시고 입학식에도 참석했다. 그렇게 부모의 빈 자리를 메워줬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회에 나가는 중요한 순간인데, 부모가 없어 기죽으면 어떡하나 며칠을 고민하다가 휴가를 냈죠. 꽃다발을 들고 가방을 멘 모습이 참 행복해보였습니다"

강동경찰서 직원들이 정수 등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모은 기중품 [사진 강동경찰서]

강동경찰서 직원들이 정수 등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모은 기중품 [사진 강동경찰서]

정수의 소식이 경찰서에 알려지면서 자연스레 도움의 손길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강동경찰서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기부회를 열어 2주간 샴푸 3세트ㆍ쌀 20kg짜리 4포대ㆍ휴지 등 생필품 200여 점을 모았다. 그리고 이 물건들은 정수를 비롯한 어려운 이웃 10가정에 직접 들러 하나하나 전달됐다. 박노라 경사는 ”일을 하다 보면 도움을 건네고 싶은 아이들은 너무 많은데 모든 가정을 돌봐줄 수는 없어 안타깝다"며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던 간에 아이는 보호 받을 대상인 만큼 정수 같은 아이들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저같은 사람 한 두 명이 아니라 아이의 권리로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준석 기자 seo.jun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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