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찾기가 힘들어 … 사실상 인사원칙 고치는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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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일정을 임시로 올리고 있는 청와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방에는 이틀 연속 ‘공식 일정 없음’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지난 13일 일정이 없던 토요일에 기자들과 산행 일정을 추가하는 등 강행군을 계속해 온 문 대통령의 행보가 인사 문제로 제동이 걸린 양상이다.

스스로 내세운 도덕성에 발목 #문 대통령, 초반 강행군 스톱 #“지금 기준으로 아무도 임명 못해 #사회적 합의로 새 기준 마련해야”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8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26일 대통령의 의중을 담은 입장을 발표한 뒤 대통령의 추가 지시나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야권이 요구하는 문 대통령의 직접 해명 요구에 대해 “현재까지, 아직은…”이라고만 하곤 입을 닫았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국회에서 향후 인선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최단 기간 내에 만들어지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야권에 맞서 국회로 공을 넘긴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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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조각(組閣)이 꼬인 배경은 문 대통령 스스로 천명한 도덕성 기준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공약에서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공직에서 배제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제시해 (인사를) 해봤는데 그런 기준으로는 아무도 임명할 수가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고 토로했다.

청와대는 28일엔 사실상 5대 비리 인사 원칙에 대한 수정을 공식화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부당 이익 편취 등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용도로 사용된 위장전입은 높은 기준을 갖고 철저히 걸러낼 것”이라며 “다만 어쩔 수 없이 주민등록법을 위반할 정도의 사안이라면 거기에 위장전입이란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새로운 기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도 개선과 동시에 높은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인사를 계속 진행하는 투 트랙으로 간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직인수위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먼저 고위공직자 임용 기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브리핑에서 “고위공직자 임용 기준안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매번 새 정부가 출범하거나 인사가 있을 때마다 얼마나 많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인재들이 희생됐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며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를 겪은 나라고 지금의 50~60대가 30~40대이던 시절엔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오늘날엔 문제가 된다”고 주장했다. 6월 말까지 기준안을 마련해 문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향후 개각용이다.

“투기 목적 위장전입은 철저히 걸러낼 것”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이 납득할 만한 고위공직자 검증 기준을 국회와 청와대가 함께 마련하자”고 했다. 특히 쟁점인 위장전입 문제와 관련, “이익을 위한 위장전입과 생활형 위장전입을 구분해 볼 것인가에 대해 여야 간 논의가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 민주당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과하게 공세를 편 것도 살펴보게 된다”고 했다.

민주당은 29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주재하는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이 예정된 만큼 이 자리에서 야당과 막판 담판을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청와대는 ‘현재로선’ 야당이 요구하는 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여권 관계자는 “전례에 비춰볼 때 대통령의 추가 입장을 요구하는 야당의 태도는 지나치다”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국면이 ‘인사 정국’으로 전환되고 향후 인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직접 사과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이미 발표한 인선을 취소하는 등의 ‘백기투항’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야당과 입장차가 있는 만큼 조각이 완료되기까지의 가장 큰 문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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