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서 발생한 '희귀질환' 산업재해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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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지난 2월 삼성전자 LCD 공장 노동자가 희귀질환인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산재를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은 적은 있으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가 같은 질환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것은 이번 판결이 처음이다. 다발성경화증은 발병률이 10만 명당 2명 이하인 신경계통의 희귀질환이다. 아직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고법 행정2부(부장 김용석)는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공장의 노동자였던 김모(33)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과 달리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지난 2003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김씨는 2년 동안 일하고 퇴사했다. 그런데 퇴사한 뒤부터 체중감소, 시력저하, 감각저하 등의 증상이 일어났다. 결국 퇴사 3년 만에 다발성경화증을 진단받은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지급을 신청했지만 공단은 “원인이 확실하지 않은 다발성경화증과 업무와의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결국 김씨는 2013년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는 패소했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발병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의학적 연구성과를 통해 질병의 발병·악화 원인으로 꼽히는 요소들이 업무 환경에 존재한다면 업무상 질병으로 봐야한다”고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다발성경화증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들 중 햇빛 노출 부족과 교대근무, 유기용제 및 중금속 노출 등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도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이 병이 발생한 사람이 4명인 점 등을 고려하면 업무환경이 병을 유발했거나 최소한 빠른 속도로 진행시켰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기흥공장은 유해가스를 실외로 배출시키는 설비가 없었다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의 보건진단 결과를 볼 때 문제점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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