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정서가 '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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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교토의정서가 선진국에서 신 산업을 낳고 있다. 2008년부터 교토의정서 적용을 받는 일본 등지에서는 온실가스를 줄여주는 전문 업체가 생겼다. 몸소 온실가스를 줄여본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 컨설팅에 발을 뻗친 기업도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 '돈'이 되기 때문에 생긴 현상들이다. 교토의정서는 일본.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이 일정량 이상 온실가스를 뿜지 못하게 하는 한편으로, 목표 감축량을 초과 달성하면 초과량 만큼 온실가스를 뿜을 권리(배출권)를 팔 수 있게 했다.

일본에서는 '에스코(ESCO)'라 불리는 환경 서비스업종이 호황이다.

설비를 개선해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주고 대가를 받는다. 도요타자동차는 최근 패스코라는 업체에 큐슈(九州) 공장의 설비 개선을 맡겼다. 에너지를 10%,이산화탄소는 20%를 줄였다. 약 240억원의 공사비는 패스코가 전액 부담했다. 대신 매년 에너지 절감 비용과 이산화탄소 배출권 판매 수익을 나누기로 했다. 이를 통해 퍼스트 에스코는 연간 80억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현진 박사는 "교토의정서에 따라 '배출권'수익을 추가로 얻게 돼 에스코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회사인 NEC는 올해부터 온실가스 절감 컨설팅 사업에 나섰다. 교토의정서에 대비한 자사 노하우를 사업 밑천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정보기술(IT)업체 NTT데이터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파악해 정부에 등록을 대행해주는 인증 서비스에 나섰다.

EU 각국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소를 우후죽순처럼 만들고 있다. 증권시장이 거래 수수료로 돈을 벌 듯이 얼마나 규모가 커질지 모르는 배출권 거래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속셈이다. 네델란드의 '유럽기후거래소'를 비롯해 독일.프랑스.영국.스페인.노르웨이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런 거래소를 세웠다. 기후거래소PLC라는 영국업체는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한 미국의 시카고에 배출권 거래소를 설립했다. 여기에서는 미국 기업 100여 곳이 배출권 거래 연습을 하고 있다. 나중에 미국이 교토의정서를 받아들일 때를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청정 에너지 사업도 각광을 받는다. 미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지난해 5월 고효율 에너지 장비 사업과 풍력.태양열 발전 등 환경 에너지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는 "그린 이즈 그린(Green is green)"이라는 말도 당시 남겼다. 앞의 그린은 환경이고, 뒤의 그린은 미국 1달러 지폐의 색깔이다. "환경이 곧 돈"이라는 뜻이다."환경 산업에서 돈을 벌겠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GE는 환경.청정 에너지 분야 매출이 2004년 100억 달러(약 9조6000억원)에서 2010년 200억 달러(약 19조원)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따라 관련 분야 연구개발 투자도 2004년 7억 달러에서 2010년 15억 달러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비하면 교토의정서 1차 적용대상이 아닌 한국의 환경 신사업 움직임은 미미하다. 김현진 박사는 "국내 기업들도 언젠가 닥칠 규제에 대비해 온실가스 줄이기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교토의정서를 신사업 기회로 삼는 적극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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