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TV 오른쪽 구석에 갇힌 장애인 참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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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홍상지 기자 중앙일보 기자
홍상지사회2부 기자

홍상지사회2부 기자

“방금 문재인 후보가 말한 건가요?” 지난 2일 대선후보들의 마지막 TV토론을 보고 있던 청각장애 1급 함효숙(46)씨가 수화 통역사 이현정씨에게 수화로 물었다. 이씨의 답변을 본 뒤 함씨는 다시 TV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은 화면 오른쪽 하단 귀퉁이에 있는 수화 통역사에게 꽂혀 있었다. 다섯 명의 후보, 그리고 사회자까지 6명의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통역사의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화면을 응시하던 함씨가 손으로 눈을 비볐다. “두 시간 동안 이 작은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눈이 너무 아파요.” 그가 이씨에게 수화로 말했다. 함씨는 통역사가 한 명이다 보니 전하는 말이 어떤 후보가 한 말인지 헷갈린다고 했다. 통역 화면이 조금 더 커지면 좋겠다고도 했다.

참정권은 단순히 ‘투표소에 가서 투표할 수 있는 권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투표하기 전에 공약 등의 정보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된다. 어쩌면 단순한 투표권 부여보다 이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장애인들은 이러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청각장애인은 자신들의 어려움을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 따른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시민단체 장애인정보문화누리 박미애 간사는 “흔히 사람들은 청각장애인이 ‘글도 읽을 수 있고 걸어 다닐 수도 있으니 다른 장애인에 비해 큰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지난 2일부터 사전투표 때까지 청각장애인 함씨와 함께 TV토론을 보고 공보물을 읽으며 그가 겪는 어려움을 지켜봤다. 함씨에게 선거 참여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공보물은 있지만 청각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자료는 없었다. 후보들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 봐도 수화로 정책을 설명하는 영상은 찾기 어려웠다. 김상화 농아사회정보원장은 “우리가 영어를 제2 언어로 배우듯 농아인들은 한국어를 제2 언어로 배운다. 문해력이 일반인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어 이들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수화 영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에는 ‘선거방송·광고에 대해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또는 자막을 방영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의무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종종 케이블 채널에서는 이를 생략하기도 한다.

함씨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대단한 ‘무언가’를 해달라는 게 아니다. 그냥 온전히 국민의 권리를 행사해 보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번 선거는 내일이면 끝이다. 다음 선거부터는 이들의 참정권이 더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아직 이들의 권리는 TV 오른쪽 아래 귀퉁이의 화면에 갇혀 있다.

홍상지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