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벤치마킹한 대선공약이 실현되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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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박진석경제부 기자

박진석경제부 기자

“대선 공약이 ‘쪽대본’ 수준일 줄은 몰랐네요.” 한국경제학회와 중앙일보의 공동기획으로 연재된 ‘대선후보 경제공약 심층 분석’ 시리즈의 한 필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달 17일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각 후보의 ‘10대 공약’을 토대로 평가서를 작성했다가 낭패를 봤기 때문이다. 이 필자는 각 후보가 공약을 계속 추가하고 보완·변경하는 바람에 몇 차례나 원고를 수정해야 했다.

실제 10대 공약을 비롯해 선거전 초기에 발표됐던 각 후보의 대선 공약 중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내용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고 재정 소요나 재원마련 방안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한 마디로 졸속 공약이었다. 어떤 측면에서 이번 대선은 졸속으로 발표했던 공약을, 수시로 등장한 쪽대본들을 통해 다듬고 정리해 완성본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 이 과정이 나쁘게만 보이지 않았다. 함량 미달의 공약이 차츰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것도 신기했지만,그 과정에서 국민이나 다른 후보 진영과 공식·비공식적 의사소통을 하고 그 결과물을 반영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해 각 후보가 서로의 공약을 베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런데 좀 베끼면 어떤가. 공약에는 저작권이 없다. 오히려 서로 많이 베끼면 베낄수록 국가 통합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주요 후보 5명의 공약은, 거칠게 정리하면 정치권에 투신한 전문가 집단 중 5분의 1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들의 공약이 벤치마킹을 통해 하나로 모여야 100%가 된다. 이게 가능해지면 당대 대한민국 집단지성이 만들어낸 국가경영 정책의 최종 완성본이자 ‘정책 협치’ ‘정책 통합정부’ ‘정책 공동정부’ ‘정책 대연정’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유권자는 자신이 속한 정치세력과 그 정책 만이 옳다는 도그마에 빠져 실패한 정권을 너무도 많이 목격했다. 새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자신의 공약 중 수정할 것은 과감히 수정하고, 다른 진영의 공약 중 받아들일 건 과감히 받아들여 국정 청사진을 완성했으면 좋겠다.

이제 꼭 하루가 남았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대표곡인 ‘내일로’(One day more)의 가사대로, 내일이 되면 신(유권자)의 뜻한 바를 알게 되리라. 누가 나라를 맡게 되더라도 유권자의 뜻, 그리고 협치의 대상이 돼야 할 낙선 후보 진영의 목소리와 정책까지 허투루 버리지 않고 수용해 ‘열린 정책’을 만드는, ‘열린 집권세력’이 되길 기대해본다.

박진석 경제부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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