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꺼질 듯 말 듯 촛불 신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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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비문(非文) 3자 단일화’의 불씨는 살아날 수 있을까. 바른정당이 제안한 안철수 국민의당, 홍준표 자유한국당,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간 3자 단일화가 제대로 된 협상을 시작하지도 못한 채 위기를 맞고 있다. 전날 바른정당의 공식 제안 뒤 세 후보가 일제히 단일화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면서다.

안 “의미 없다” 유 “내 갈 길 갈 것” #홍 “안 된다는 사람과 결혼 못해” #바른정당선 물밑접촉 계속 시도

이런 흐름은 26일에도 그대로였다. 강원도를 찾은 안 후보는 “후보 단일화 같은 것은 하지 않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며 “그런데도 후보 단일화를 할 것이라고 음해하는 후보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전날 TV토론회 말미에 3자 단일화 추진 움직임을 ‘적폐연대’라고 비판한 걸 반박한 것이다.

홍 후보도 기자들에게 “안 후보와의 단일화는 의미가 없다”며 “우리가 안 후보와 단일화를 하면 오히려 문 후보에게 진다”고 주장했다. “수도권과 호남을 (문·안) 두 사람이 양분하고 있는데 안 후보가 사퇴하면 그 표가 나에게 안 오고 전부 문 후보에게 간다. 안 후보가 호남에서 선전하길 바란다”면서다. 그는 바른정당 유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안 된다는 사람과 억지로 결혼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유 후보도 “제 입장엔 변함이 없고,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바른정당 지도부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중도·보수 후보 단일화를 위한 시민사회 원탁회의’에도 참석했다. 전날 세 후보가 부정적 입장을 밝힌 데 대해 그는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의 수도권 중진 의원도 “발표를 10분 남겨놓은 상황에서도 원래 후보들은 단일화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 바른정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 원내대표와 김무성 의원이 각각 자유한국당, 국민의당과의 물밑접촉을 시도 중이지만 아직 별 소득은 없다고 한다.

일각에선 이들의 단일화 제안이 대선 자체보다 대선 이후를 노린 포석이란 분석도 있다. 대선 이후 정계 개편 정국이 펼쳐질 경우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거나 배제되지 않도록 당내 ‘비유승민’ 세력이 단일화 이슈를 선제적으로 던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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