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비천해도 존재 이유 있죠, 팔순 앞둔 소설가의 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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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4년 만에 새 소설 『뜻밖의 生(생)』을 내고 26일 기자간담회에 임한 소설가 김주영씨. [사진 문학동네]

4년 만에 새 소설 『뜻밖의 生(생)』을 내고 26일 기자간담회에 임한 소설가 김주영씨. [사진 문학동네]

대하소설 『객주』의 작가 김주영씨가 새 장편소설 『뜻밖의 生(생)』(문학동네)을 냈다. 2013년 『객주』를 10권으로 완간한 지 4년 만이다. 1939년생인 그가 세는 나이로 일흔아홉, 만으로 일흔여덟에 이룬 ‘사건’이다. 80년대 중반 9권으로 일단락됐던 『객주』는 사라졌던 우리말의 보물창고, 질펀한 육담의 향연이었다. 보부상들의 거친 삶을 통해 조선후기 상업사를 되살렸다는 평까지 얻었다.

새 장편 『뜻밖의 생』 낸 작가 김주영 #개에게서 도움 받는 얘기 등 그려 #“장담하건대 굉장히 재미있을 것 #1만 부 팔리면 또 쓰겠다” 농담도

26일 기자간담회. 소설의 색깔과 됨됨이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의 김씨는 특유의 친화력을 무기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내가 좀처럼 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지 않는 사람인데, 장담하건대 굉장히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이 책이 1만 부 팔리면 다음 소설책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쓸 때 재미있게 쓰면 책이 많이 팔리는데 내가 쓴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라고도 했다.

소설은 강렬한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주인공 박호구가 유년시절, 노름판 타짜였던 아버지 박무도가 어머니를 무자비하게 구타한 뒤 맺는 가학적인 성관계를 목격하는 장면이다. 노숙자·곡예단원 등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 노년의 박호구는 안개 자욱한 동해안 바닷가에서 창녀 최윤서와 마주친다.

김씨는 “사회부조리를 고발하든 남녀 사랑 문제를 다루든, 아니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혹은 종교가 무엇인지를 얘기하든 간에 문학의 최종 목표는 독자를 위로해줄 수 있느냐여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번 소설이 그렇다는 얘기다. “최하층 밑바닥 인생으로부터도 위로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특히 박호구는 노숙자 시절 데리고 다니던 개 칠칠이로부터 적지 않은 위안을 받는다. 개의 체온으로 추운 겨울을 버틴다. 김씨는 “최악의 비속어에 쓰이는 동물인 개가 사람에게 오히려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가 소설에 나온다”고 소개했다. 역시 비천한 존재가 전하는 위로다. 소설 제목 ‘뜻밖의 생’은 박호구 등이 맞닥뜨린 험한 인생을 뜻한다.

김씨는 “(집필과정에)여러 장애가 있었다. 내가 잘 쓰는 게 섹스 장면과 욕설 표현인데 나이를 생각해 스스로 검열하다 보니 힘들었다”고 했다. 반은 맞고 반은 농담이었다.

김씨는 “‘늑대 뒤를 따라다니면 늑대처럼 울게 된다’는 속담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내가 그렇게 살았다”고 말했다. 한때 이문구·고은·박태순 등 문인들과 생활하다시피 하며 자신의 문학의 길을 가다듬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내가 절대 거절 못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문학인의 부탁, 젊은 여성의 유혹”이라고 농담했다.

김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 집필 작업에 참여했고, 2004년 열린우리당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배경을 묻자 “소설가이기도 한 김한길씨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였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 취임사에 부산에서 파리 가는 기차표를 끊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대목이 있는데, 내가 건의한 것”이라며 “정치적 수사 역시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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