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대신 법정에 나온 '김영한 비망록'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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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재판에서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비망록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서울중앙지법에서 17일 열린 재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인 업무수첩 원본을 제시했다. 앞서 특검팀은 김 전 수석의 수첩을 증거로 신청했지만 김 전 실장 측은 “김 전 수석이 작성한 게 맞는 지 알 수 없다”며 동의하지 않아 원본을 제시한 것이다.

통상 검찰이 제출한 문서를 증거로 채택할 때 변호인이 부동의할 경우 문서를 작성한 사람을 증인으로 불러 직접 작성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한 뒤 증거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특검팀은 고인이 된 김 전 수석을 부를 수 없어 원본을 법정에 가져온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의 변호인은 “원본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김 전 수석이 작성한게 맞는지, 어떤 경위로 작성했는지 등에 있어서 신빙성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동의 한 것”이라고 맞섰다. 특검팀은 “그럼 (비망록을 전달한) 김 전 수석의 어머니를 증인으로 신청해야 하냐”고 반박했다.


이를 지켜보던 김 전 실장은 “특검은 김 전 수석이 저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비망록의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힘들었다’는 심경이 적힌 부분이 있다. 어떤 경위로 오해를 해서 불쾌한 감정을 가졌는지 몰라도 수첩 자체만 보면 저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는 것을 참고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특검팀은 “결국 김 전 수석이 썼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변호인은 “그런 식으로 시비를 걸면 끝이 없다”고 항의했다.

김 전 수석의 수첩엔 2014년 6월부터 약 7개월 간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내용이 적혀있다. 이중엔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지시를 내린 정황으로 지목된 메모 등도 포함돼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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