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동선·발언으로 북·중에 경고 날린 美 펜스 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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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2박 3일간의 방한은 행보와 발언 모두 치밀하게 짜여진 대북한, 대중국 압박 메시지였다.

하이라이트는 17일 오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있었던 한미 공동의 입장 발표에서다. 최근 미국의 시리아 공군기지 공격, 아프가니스탄 대규모 공습까지 거론한 펜스 부통령은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평화적으로 달성하기를 바라지만,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직전 비무장지대(DMZ) 방문에서도 그는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60m 떨어진 곳에 서서 “북한은 미국과 동맹국, 한미동맹의 결의(resolve)를 오판(mistake)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북측 경비요원들은 이런 펜스 부통령을 지켜보고 있었다.

"북한은 이 지역에 있는 미군의 힘(strength of armed forces of the US)을 시험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발언은 빈말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 등 항모 2척을 한반도 인근 해역에 배치해놓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미 행정부와는 달리 좀 더 행동으로 보여주는 대북 옵션을 택할 것이란 점을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취임 이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을 압박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전령 역할도 톡톡히 했다. 그는 이달 초 미·중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나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의 위협을 적절히 다룰 것이라는 큰 믿음(confident)을 갖고 있다"면서도 "중국이 북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미국과 우리 동맹국들이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대한 확고한 입장 표명도 대중국 압박 메시지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은 중국이 보복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중국은 이런 방어조치를 필요하게 만든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관련 사정에 밝은 정부 소식통은 “사드 배치는 차기 대통령이 결정할 것이라는 전날 미측 인사의 발언을 사실상 부인하고, 기존의 조기 배치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펜스 부통령이 직접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김성한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새 대북접근법인 ‘최고의 압박과 개입(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에서 ‘개입’의 대상은 중국"이라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을 최대한 압박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일단 중국의 체면을 세워준 뒤 '진전이 없으면 모든 옵션을 고려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중국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화여대 국제학부 박인휘 교수는 “미국이 이전보다 북한 문제에 있어 훨씬 결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가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에게 준 선물. 고려백자 접시에 한국전 참전용사인 펜스 부통령의 아버지가 훈장을 받는 사진을 그려넣었다. [사진 국무총리실]

펜스 부통령의 아버지가 훈장을 받는 사진. [펜스 부통령 트위터]

펜스 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한미동맹이 '혈맹'이라는 점을 가는 곳마다 강조했다. 여기엔 그의 가족사도 작용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에드워드 주니어 펜스는 6·25 전쟁에 참전했으며, 폭찹힐 고지 전투에서 사투를 벌인 공로로 1953년 4월 육군 훈장인 동성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다. 한국에서의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 참배를 택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한국은 한·미 양국 군인들의 희생 덕분에 가능했으며, 거기에는 우리 아버지도 있었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65년 전 제 아버지인 에드워드 펜스 소위는 미국군 45대 포병사단에 소속돼 한국군과 함께 이 나라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한·미는 함께 피흘리고, 함께 번영해왔다. 우리 두 자유국가의 우정은 영원하다(eternal)”고 말했다. 그가 ‘영원’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는 회견장에 있던 한국 측 인사들도 놀라는 기색이었다.

최근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있어 한국을 배제한 채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우려를 잠재우는 발언이기도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측이 국내 일각의 우려가 근거가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 펜스 부통령이 직접 이야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총리실은 펜스 부통령에게 그의 아버지가 동성훈장을 받는 사진을 넣은 고려백자 접시를 제작해 선물했다. 펜스 부통령은 아버지 사진을 백악관 웨스트윙 집무실에 직접 가져다놓을 정도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앞서 펜스 부통령이 황 대행과 만나기 위해 총리 공관을 찾았을 때 황 대행은 직접 다가가 우산을 씌워주는 등 이날 면담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황 대행과 펜스 부통령은 약 두 시간 동안 면담과 업무오찬을 함께 했다. 오찬 메뉴는 너비아니와 비빔밥이었지만, 양 측 모두 협의에 집중하느라 식사를 제대로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유지혜·박성훈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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