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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의 FTA 재협상도 서두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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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외형상 보면 FTA 협상이 부진한 것은 농업 개방이 핵심 쟁점인 것으로 보이지만 FTA에 대한 양국의 입장 차이가 더 근본적인 원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한국은 경제 요인으로 FTA 추진을 검토했고 지금까지 진행된 FTA 역시 경제 요인이 정책 결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일본은 정치외교적 요인이 정책결정의 우선적인 판단기준으로 작용했다. 물론 장기 경기침체에 대한 돌파구, 인구의 노령화에 따른 산업구조 개편 등 경제적 요인도 중요했겠지만 중국의 부상에 대비하면서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과의 FTA 추진이 우선 목표로 설정됐다.

이에 비해 한국은 개방을 통한 구조조정, 수출시장 확대 등 경제적 요인을 중시해 FTA를 추진했고, 경제적 측면에서의 확신 없이는 추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일본이 농업 예외를 주장하려면 한국이 취약한 제조업에 대한 예외 허용을 수용해야 이치에 맞지만, 일본은 자국에 유리한 제조업에 대해서는 '거의 완전 자유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멕시코.태국 등 이미 체결된 협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일본 우익정치권의 자극적인 언행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불신이 가중돼 일본 정부가 한국과의 FTA에 집착을 보이는 것마저 우리에게는 경계의 대상으로 비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가까운 국가인 일본과의 FTA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먼저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보면 최근 들어 한국 경제의 대 중국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한.일 FTA 체결은 동북아 내 역학관계의 균형 달성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조정자로서의 한국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고, 동아시아에서 최근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는 역내 경제통합의 주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원천기술이 부족한 반면 뛰어난 생산기술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일본과 긴밀한 산업협력 관계를 형성해야 하며, FTA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교역 및 투자 활성화가 산업협력에도 적용돼 양국 산업협력의 시너지가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일본과의 FTA에서 가장 우려되는 분야가 부품소재 산업에 대한 피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부품소재 산업은 수출산업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2005년 사상 최대 수출실적(1238억 달러)을 기록했고, 올해 수출은 1300억 달러를 무난히 돌파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부품소재 수출 증가는 대일본 부품소재 수입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즉 일본 부품을 수입해 조립된 부품소재를 전세계로 수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입대상국이 일본이지만 수입의 대부분이 국내 생산에 중간재 혹은 시설재로 사용되고, 최종소비재로 사용되는 비율도 다른 국가에 비해 매우 낮다. 이를 통해 한.일 FTA의 부정적인 영향이 일부 품목에 국한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외환위기 직후 실시된 수입선 다변화 조치 철폐로 한때 일본으로부터 전자제품 수입이 급증한 바 있으나 경쟁촉진으로 인한 국산 제품의 경쟁력 향상과 더불어 서비스 개선으로 인해 일본제품에 대한 수요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종합하면 한.일 FTA는 양국 경제에 득이 될 수 있으며,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은 제한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일 FTA를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로서는 두 가지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먼저 일본 측이 주장하는 농업 예외조치에 상응하는 제조업 자유화 예외를 기본 전제로 협상을 재개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엉성한 협정을 체결하고 이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될 수 있다. 다른 방안은 일본의 자유화율을 수용하더라도 한국의 관심품목이 농업개방안에 반영될 수 있는 구도의 사전합의를 전제로 협상을 재개하는 것이다.

올해는 미국과의 FTA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어 한국 통상담당자의 관심이 미국으로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이 균형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은 통상협상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제조업의 기술적 특성, 동아시아 내 경제통합 대비 등을 고려하면 인근 국가와의 경제협력 강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러한 접근방식은 북미지역과의 협상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일본과의 FTA 협상 재개를 위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외교관계에서 정치와 경제가 분리될 수 없지만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더라도 경제적으로는 보다 긴밀하게 협력할 때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고 정치적 현안도 해소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가칭 'FTA 구조조정지원법'을 조기에 통과, 발효시켜 일본 등과의 FTA 추진에 따른 피해산업의 구조조정 및 실직자의 전직을 위한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FTA 체결은 시장개방을 의미하므로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경쟁력이 약한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거대경제권과의 FTA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므로 업계는 연구개발 역량 및 서비스 강화, 노사관계 합리화, 부품조달체계 강화 등을 통해 경쟁력 향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와의 FTA 추진이 부진해지자 지난해부터 한.일 FTA를 후순위로 설정했으나 이는 일본 통상 당국의 책임회피 및 전략적 목적일 뿐 우리나라와의 FTA는 여전히 가장 시급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전 일본 외무차관이 언급한 바와 같이 자국이 절실히 필요한 협력상대와 FTA를 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은 상대국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