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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시인의 3년 6개월 ‘사막 견문록’ … 세상에 선악은 있되 우월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이란-페르시아
바람의 길을 걷다
김중식 지음, 문학세계사
360쪽, 1만6000원

시인이 사막에 갔다. 아니 ‘가다’는 동사는 일회적이다. 시인은 사막에서, 그러니까 누 천년 세월을 집어삼킨 거대한 폐허의 땅에서 3년 6개월을 살았다. 사막에서 시인은 오랜 시간 갇혔고 이따금 떠돌았다.

김중식(50)은 시인이다. 한때는 전직(前職)이었으나 최근 현업에 복귀했다. 그 사이에 옛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에서 살았던 42개월의 시간이 있다. 사막에 갇혀서는 시를 썼고 사막을 떠돌며 2500년 전 제국의 흔적을 더듬었다. 이 책은 ‘사막에서 유랑을 선택당한’ 시인의 사막 견문록이자 모래 답사기다.

김중식은 시인의 감성으로 관찰하고 기자의 시선으로 기록했다(그가 시를 끊었을 때 직업이 기자였다). ‘모든 삶이 평등하게 쪼잔한’ 사막에서는 ‘푸르름을 포기한 풀’을 들여다보며 순응하지 않으면 방도가 없는 삶을 말했고, 모래성에 불과한 유적 앞에서는 유럽이 타자(他者)로서 서술했던 페르시아의 역사를 교정했다.

시인이 바로잡은 페르시아 역사를 잠깐 보자. 이를테면 마라톤은 이란 입장에서 환영할 수 없는 종목이다. 이란으로서는 뼈아픈 패배의 역사고 우리도 그리스의 승리만 기억하지만,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적은 8승 1무 2패쯤으로 페르시아가 압도했다. 할리우드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 용사 300명에게 수모를 당한 페르시아 왕 크레르크세스 1세는 정말로 ‘관대한’ 왕이었다(페르시아의 왕들은 대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관용정책을 썼다). ‘페르시아’는 그리스가 붙여준 이름이고 이란인은 스스로 이란이라고 불렀다. ‘이란(Iran)’은 ‘고귀한’의 뜻이다.

사막을 유랑하고서 시인은 ‘세상에 선악은 있되, 삶에 우월은 없다’고 적었다. 글쎄, 반대 아니었던가. 25년쯤 전 ‘뼛속을 긁어낸 의지의 대가(代價)로/석양 무렵 황금빛 모서리를 갖는 새는/몸을 쳐서 솟구칠 때마다 금부스러기를 지상에 떨어뜨린다(‘황금빛 모서리’ 부분)’고 독한 생의 노래를 부를 때 그는 살아내는 일 앞에서 옳고 그른 건 부질없다고 말했었다. 천년왕국을 덮은 모래바람은 시인의 모 난 생각도 깎아냈나 보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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