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사에 이름 올릴 현대 작가 꼽는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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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 현대미술 작가 가운데 한국 미술사에 이름을 올릴 이는 누구일까. 현대미술 100년 역사에 남을 작가를 조심스럽게 꼽는 첫 발언이 나왔다. 미술사학자 안휘준(전 서울대 교수)씨는 석남 이경성 미수기념 논총집에 발표한 '어떤 현대미술이 한국 미술사에 편입될 수 있을까'란 글에서 다섯 가지 기준과 원칙을 들고 그 잣대에 들어맞는 작가로 박수근과 김환기 등을 꼽았다.

안휘준 교수는 창의성.한국성.대표성.시대성을 우선 꼽고 기타 사항으로 작고 작가일 것과 제작 연대가 분명할 것 등을 내세웠다.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미술사가답게 역사적 맥락과 관점을 강조했다. 그는 사실성.진실성.객관성 등에 의거해 신뢰할 수 있는 사료를 골라내는 '사료의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가 첫째로 든 창의성은 한 마디로 새로운 양식, 다른 작가와 구별되는 스타일을 창출했느냐 하는 점이다. 둘째 기준인 한국성은 한국 미술사 편입을 위한 잣대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안 교수는 20세기 최고 화가로 인정받는 박수근과 김환기의 작품이 창의성.한국성.국제성을 고루 갖추었다고 짚었다. 이들의 그림이 담아낸 한국적 주제, 독특한 개성적 표현법, 유화의 적극적인 수용과 활용 등은 세 가지 요소를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대표성을 잘 드러낸 화가로 수묵산수화의 이상범.변관식.노수현.허백련, 채색인물화의 김은호.박생광, 유화의 박수근.김환기.유영국.장욱진 등을 예로 들었다. 대중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작가가 대표성을 지닌다고 볼 수 없다는 따끔한 비판도 곁들였다.

시대성과 관련해 안 교수는 민중미술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20세기 한국회화사나 미술사를 편찬할 때 시대성과 관련해 절대 제쳐놓을 수 없는 게 민중미술이라는 것이다. 민중미술 작가들만큼 치열한 '시대성'을 지닌 작가나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그는 "어찌하여 서구 미술의 아류는 넘치면서도 현대판 한국적 풍속화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인가"라고 반문하면서 "바로 작가들이 '시대성'을 경시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꼬집는다.

그는 미술사학자가 쓴 이 글이 창작에 임하는 작가와 비평에 기여하는 평론가가 창작 활동을 '역사적 입장'에서 '역사적 맥락'과 연관지어 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국 미술사나 한국 회화사를 위시한 분야별 통사의 한 부분으로 현대미술을 편입시키는 데 있어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임할 것인지 다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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